20년 동안 22분의 변화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당신의 가족은 가사노동을 골고루 나누어 하느냐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대표적 가사노동인 식사준비, 빨래, 청소를 잘게 쪼개서 다시 묻는다면 그래도 똑같이 대답할 수 있을까? 장을 보고, 냉장고를 청소하고, 남은 식재료 혹은 음식의 재활용 방법을 고민하고, 구매처마다 특가상품을 들여다보고, 구성원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음식을 조절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담을 봉투를 사고, 그 쓰레기를 적절하게 내다버리는 일을 표로 만들어보아도 골고루 한다고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빨래 역시 세탁기 작동 횟수보다 더 넓게 의생활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계절이 바뀔 때 옷장을 뒤집고, 물빨래할 수 없는 옷을 세탁소에 보내고 찾아오고, 나누고 수선하고 버릴 옷을 다 구분해 그에 맞게 처리하고, 옷장의 습도를 확인해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하고, 볕이 좋은 날 이불을 내다 말리는 일을 나누어 하고 있어야 평등하게 집안일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가사를 표면적으로 이해할수록 ‘나는 적극적으로 집안일을 한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식탁을 치우고 남은 음식을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로 옮기고, 싱크대의 물기를 닦아내는 과정을 생략한 채 설거지를 비누칠과 헹굼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그때는 나머지 노동을 하는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숨어 있는 노동의 무게를 모르니 이론과 현실이 달라진다. 각종 조사에서 가사노동을 누가 해야 하느냐고 물을 때마다 응답자들 대부분이 부부가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생활시간 통계가 알려준다. 맞벌이 부부를 기준으로 여성이 145분의 가사노동을 할 때 남성이 50분을 하고 있다고. 심지어 외벌이 여성이라 할지라도 남성의 119분에 비해 더 많은 156분의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고.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얼마 전 강의에서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남성 청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세상이 달라진 게 언제인데 옛말을 하고 있느냐며 본인을 비롯해 여기 앉아 있는 많은 남성들이 설거지며 청소를 많이 한다고 화를 냈다. 같은 내용으로 강의를 세 번 했는데 매번 같은 반응을 보며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많은 남자들은 가사노동이 한쪽 성별에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10년, 20년 전에는 엄마 혹은 아내의 희생과 노고를 생각하며 젖은 손이 애처롭다고 노래라도 불렀건만 이제는 성별에 따른 차이마저 인정하지 않는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발표만 보아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데 맞벌이 남성의 경우 가사노동시간이 꾸준히 늘어 20년 전에 비하면 무려 하루 22분이나 더 하고 있다. 그분들 입장에선 너무나 달라진 세상인 셈이다.

요즘은 어린이들에게 ‘아빠다리’라는 표현 대신 ‘나비다리’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언제든 일어나 일을 할 수 있게 반만 주저앉은 ‘엄마다리’와 대비되는 아빠다리는 한번 앉으면 일어날 마음이 없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자세이다. 언어가 담고 있는 고정관념을 끌어내리기 위해 사람들은 언어를 바꾸고 있다. 그런데 언어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 걸쳐 문화를 반영해 만들어진 것이다. 언어를 바꾸려는 노력은 성과가 드러나고 있는데, 과연 문화도 그 속도만큼 바뀌고 있는 것일까.


Today`s HOT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아르메니아 국경 획정 반대 시위
파리 뇌 연구소 앞 동물실험 반대 시위 이란 유명 래퍼 사형선고 반대 시위
뉴올리언스 재즈 페스티벌 개막 올림픽 성화 범선 타고 프랑스로 출발
친팔레스타인 시위 하는 에모리대 학생들 러시아 전승기념일 리허설 행진 연방대법원 앞 트럼프 비난 시위 보랏빛 꽃향기~ 일본 등나무 축제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