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대한 세 개의 단상

신형철 문학평론가

1. [특권] 아버지 곽상도의 소개로 화천대유에 입사해 6년을 일하고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아들 곽병채씨는 이렇게 항변했다. “저는 너무나 치밀하게 설계된 <오징어 게임> 속 말일 뿐입니다.” 많이들 지적했다시피 이 비유는 틀렸다. 극중 인물들의 벼랑 끝 절망이 그에게 있었을지 의문이고, 부친이 화천대유로부터 후원금을 받았으니 아들인 그는 오히려 설계자 쪽에 속한다. 작품에서 그와 비슷한 캐릭터를 굳이 찾는다면 설계자라는 신분을 감추고 게임에 참여한 오일남(오영수)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안전을 보장받은 상태에서 게임을 즐기다가 적절한 시기에 자진 탈락해 그 지옥에서 빠져나온 인물이니까.

신형철 문학평론가

신형철 문학평론가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이정재)에게도 특권이 있을까? 제 가족들에게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그가 그럼에도 사실은 선한 인간이라고 이해받는다는 것, 즉 주인공으로서의 특권이 있다. 이를 두고 ‘한국 중년 남자’에 대한 감독의 자기투사적 연민일 뿐이라고 성급히 비판하기 전에, 이 인물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중 하나이자 2009년의 저 참혹했던 파업 진압 현장에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10년 동안 무너져 내린 사람으로 설정돼 있음을 오래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서사가 기훈에게 품는 연민은 막연한 ‘중년 남성에 대한 연민’이라기보다는, 지난 세월 자본의 폭력에 파괴된 이들에 대한 구체적인 연민이다. 그를 향한 연민이 다른 이에게 주어질 연민을 뺏는 것도 아니다. 이 연민을 조롱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2. [재현] 오랫동안 여성 캐릭터가 ‘성녀’와 ‘창녀’로 양극화된 채 재현돼 왔다는 비판은 이제 상식이 됐다. 예외적인 여성 캐릭터에 대표성을 부여하고 ‘이런 여자밖에 없다’고 말하는 재현은 당연히 비판되어야 한다. <오징어 게임>의 사기꾼 캐릭터 한미녀(김주령)는 어떤가. 그녀가 ‘여성은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의 성을 재화로 거래한다’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준다는 비판이 나왔는데, 이에 대해 한미녀 캐릭터가 무슨 대표성을 갖느냐고, 새벽(정호연)과 지영(이유미)도 있지 않느냐고 반박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 봤자 셋뿐이다. 더 많아지고 다양해져야 특정 캐릭터에 부정적 대표성이 부여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기계적인 처방이지만, 한동안은 불가피할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극단적 선택의
참혹한 깊이를 들여다보는 서사
반면 드라마 ‘인간실격’에선
죽을 권리조차 없는 사람들의
텅 빈 내면의 역설적 깊이를 본다

그런데 여성 재현 비판이 ‘그런 여자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기를 넘어 ‘내가 아는 한 (한미녀 같은) 그런 여자는 없다’고까지 말하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첫째, 그것은 내가 속해 있는 정체성 집단의 이미지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확인하고 싶다는 나르시시즘으로 연결될 수 있다. 여성 캐릭터에게는 옳고 선한 속박도 속박이다. “오류를 범하는 여성, 잔인한 여성이 없다면 여성의 행위성 또한 있을 수 없다.”(리타 펠스키) 둘째, ‘그런 여자는 없다’라는 규정적 명제는 ‘그런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라는 배타적 명제를 품고 있기 때문에 정체성의 특정 특질을 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면 소수자 집단 내부에 또 다른 소수자가 탄생하게 된다. 한미녀는 바람직하지도 일반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그런 여자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여자도 여자다.

3. [차이] <오징어 게임>이 ‘죽음의 게임’을 소재로 한 다른 서사와 어떤 차별성을 갖기에 이토록 광범위한 호응을 얻는지가 토론거리다. ‘어느 날 문득 게임이 시작되어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해 치밀한 두뇌 싸움을 벌인다.’ <오징어 게임>은 이런 식의 이야기가 아니다. 참가자 456명 중 455명은 죽는다는 것이 첫 번째 게임 이후 알려졌다. 그런데도 참가자들은 게임장으로 복귀했다. 살기 위해 또 죽기 위해. 이 게임에 참가하는 것은 ‘456분의 1’의 확률로 부자가 되는 일이지만, ‘456분의 455’의 확률로 자살에 성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라 돌려 말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여하튼 ‘선택’이라는 점이 강조된다. 그러니까 이 서사는 죽기를 선택한 사람들의 서사이고, 그런 선택의 참혹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서사다.

이 455개의 (타살의 형식을 빌린) 자살이 스펙터클과 카타르시스를 창조하고 있고 우리가 바로 그것을 즐긴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불가능하다. 시리즈 전체에서도 6화, 그중에서도 새벽과 지영의 대결이 이 서사의 백미를 이루는 것은 지영이 여기서 이것이 ‘자살 게임’임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살 힘도 없지만 죽을 힘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삶에 처해진’ 사람들이다. 나는 그런 이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라마 <인간실격>에서 본다. 여기엔 스펙터클도 카타르시스도 없다. 텅 빈 내면의 역설적 깊이만 있다. 내게는 이 탁월한 드라마 <인간실격>의 시청률이 1%라는 결과가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대성공만큼이나 놀랍다. 아니 놀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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