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카르텔의 ‘합법적 부패’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엘리트 카르텔의 ‘합법적 부패’

“나는 미래를 보았다. 그것은 현재와 매우 흡사하다. 단지 더 오래갈 뿐이다.” 지금 대선 정국을 장악하고 있는 대장동 개발사건을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세계 각국의 부패 문제를 비교 연구한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존스턴은 자신의 대표적인 저서 <부패의 증후군(Syndroms of Corruption)>을 이 인용문으로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민주화를 통해 부정부패는 종식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정치적 부패는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재생산된다. 어떤 사람이 정권을 잡더라도 부패는 현재처럼 아주 오래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에 미래가 두려워진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의혹은 이제 수많은 게이트를 만들어내며 한국사회의 민낯을 폭로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발전하고 있다. ‘화천대유’라는 괴상한 이름을 가진 자산관리회사가 대장동 개발사업을 위한 특수목적법인 ‘성남의뜰’의 지분 1%를 갖고 577억원의 배당금을, 자회사인 ‘천화동인’은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6%의 지분으로 3463억원의 배당금을 받았다. 자본금 5000만원을 출자해 만들어진 화천대유가 대장동 개발 관련 자산관리를 맡음으로써 관련된 사람들이 총 4040억원의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불로소득이 곧 부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대착오적인 주역의 괘는 역설적으로 이 사건의 본질을 말해준다. 화천대유(火天大有)는 본래 하늘의 도움으로 천하를 얻는다는 뜻이고, 천화동인(天和同人)은 잘못된 세상을 타파하기 위해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대동 세상을 이룬다는 뜻이다. 천하를 얻는다는 것은 세상을 돈으로 살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부’를 얻는다는 것이고, 그리고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간다는 것은 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권력’의 네트워크를 결성한다는 것으로 의미가 역전되었다. 그 결과는 잘못된 세상을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속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부패이다.

다수보다 소수 위한 합법적 부패가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의 전형
세상 속여 자신의 이익 챙긴 대장동
결국 민주제 손상에 국민 신뢰 파괴
대선 이후의 미래가 걱정된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은 민주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패이다. 본래 공적인 역할이나 자원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오용하는 부정부패는 사람들이 부와 권력을 추구하고 사용하고 교환하는 방식에서 발생한다. 우리가 대장동 사건의 규모와 수익 구조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의 조직과 네트워크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화천대유에서 고문으로 활동하거나 자문을 한 인물들에는 최고위급 법조계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법에 능통한 이들이 이 사건에서 어떤 역할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법률상의 구멍을 잘 아는 사람이 합법의 위장술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화천대유의 네트워크는 법조계 거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사건에는 관료, 정치인, 법조인, 언론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전면에 드러난 사실은 화천대유의 대주주인 김만배와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유동규를 중심으로 얽혀 있는 사람들이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들이 뇌물과 배임과 같은 불법을 저질렀는지는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비리가 합법적인 사업처럼 보이도록 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50억 클럽’에 가입했다는 소문은 정말 터무니없는 것일까? 누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이런 네트워킹을 만들었을까?

“화천대유, 누구 겁니까?” 이 질문은 겉으로 드러난 비리의 주체가 아니라 숨겨진 세력의 실체를 확인하고자 한다. 상식적이지 않은 대장동 개발사업에 엄청난 비리가 개입되었을 것이라는 의혹은 본래 당시 성남시 시장이었던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겨냥하는 것처럼 보인다. 2015년 대장동 개발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하고 민관협동 개발 과정과 수익배당 설계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이재명 지사의 측근일 뿐만 아니라 개발방식을 민간 개발에서 공공과 민간의 공동사업으로 바꾼 당사자는 바로 당시 이재명 시장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일탈인가? 아니면 조직적 불법인가? 이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부패의 양태가 변했다는 점이다. 대장동 사건을 대선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어떤 진영은 토건세력과 정치인이 결탁한 비리라고 주장하고, 또 어떤 진영은 재판거래가 의심되는 법조계와 정치인이 결탁한 비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로가 상대방의 게이트로 만들려는 이 사건의 핵심은 엘리트 카르텔의 부패라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새롭게 경험하는 부패는 단순한 뇌물을 넘어서는 체계적이고, 복합적이고, 합법적인 부패이다. 서로의 권력을 견제해야 할 법조인, 정치인, 언론인과 행정 관료가 서로의 형식적인 독립성은 유지하면서 이익을 획득하기 위해 서로의 행위를 담합하는 카르텔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엘리트 카르텔은 각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고위층 인사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겉으로는 서로 견제하고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서로의 행위를 미리 합의할 수도 있다.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활동한 권순일 전 대법관은 대법관으로 재직하던 작년 7월 이재명 경기지사의 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무죄 취지 판결을 주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토론 과정에서 무죄 의견을 냈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다. 무죄 의견 형성을 주도하거나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것이 불법은 아니다. 대가성 돈이 오간 것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장동 개발이 불법은커녕 공익을 위한 사업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대장동 개발사업은 민간사업자가 개발이익을 100% 독차지할 뻔했던 것이었는데, 그것을 막고 개발이익 중 5503억원을 공공이 환수한 모범적인 행정사례라는 것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수사를 의뢰하면서 단 1원이라도 부당한 이득을 취했다면 후보직과 공직을 모두 사퇴하겠다고 천명했다. ‘부패지옥 청렴천국’을 외치는 대선 후보가 설마 단돈 1원이라도 받았겠는가? 설령 이 말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길거리 선교처럼 공허하게 들리더라도, 법에 거리낄 게 없다는 그의 입장은 확고해 보인다.

문제는 비리와 관련된 돈의 흐름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더라도, 이 사건은 엘리트 카르텔 부패의 전형적인 유형이라는 점이다. 마이클 존스턴에 의하면 부패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중국,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에서 주로 나타나는 ‘독재형 부패’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부와 권력을 착취하는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둘째 유형인 ‘족벌 부패’는 시장의 기회는 확대되지만 제도가 취약한 러시아와 필리핀과 같은 사회에서 과두제 특권층에 의해 이루어진다. 셋째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는 시장 기회와 제도가 발전하였지만 권력을 견제할 민주제도가 미숙한 한국과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다. 넷째 유형인 ‘시장 로비형 부패’는 민주 제도가 발전한 선진국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부정부패는 그 양태가 변화할 뿐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후진국형 부패는 ‘불법적 부패’가 분명한데, 엘리트 카르텔과 시장 로비처럼 선진국형은 부패가 합법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 후진국 부패는 뇌물을 공공연하게 주고받지만, 선진국형 부패는 합법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새로운 기회들이 증대된다. 마찬가지로 부와 권력을 합법의 형식을 빌리지만 불공정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도 많다. 단돈 1원도 받지 않았다고 해서, 또는 그것을 법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부패가 아닌 것은 결코 아니다.

부패는 공적인 기회와 자원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공익과 관련된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 결국은 다수보다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합법적 부패’다. 이런 부패는 합법적이지만 민주적 제도를 손상시키고, 궁극적으로는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파괴한다. ‘누가 영향력을 행사하였는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사익을 위해 공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대장동 사건을 보면서, 대선 이후의 미래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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