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때문에 숲이 사라졌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의 거리두기]‘탄소중립’ 때문에 숲이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숲이 사라졌다. 아름드리는 아니어도 족히 몇십 년은 된 참나무로 제법 빽빽하였던 숲이 며칠 동안 전기톱의 굉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없어졌다. 숲이 사라진 자리에 벌거숭이 민둥산이 처연하게 드러났다. 어떤 동네 사람은 망연자실할 나에게 햇볕이 일찍 들어 좋은 점도 있겠지요 하고 농담을 건네지만, 사라진 것은 숲만이 아니었다. 이따금 앞마당까지 내려오던 고라니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췄고, 다람쥐와 청설모도 사라지고, 종종 들러 인사를 건넸던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는다. 텃밭에 출몰해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던 뱀이 나타나지 않으니 좋겠다는 농담에 헛헛한 웃음만 나온다. 숲이 사라지면 생명도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밀려온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왜 숲의 아름다운 나무들을 모두 베어버린 것일까? 무슨 영문인지 잘 몰라서 얼떨한 나에게 동네 이장이 건넨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이 모든 사달이 ‘2050 탄소중립 산림 부문 추진 전략’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수령 30년 이상 된 나무는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숲을 대거 벌목하고 대신 어린나무 30억그루를 새로 심는 방안이 탄소중립 추진전략의 핵심이었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숲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40~50년 정도밖에 안 된 나무들을 전부 베어내고 새로 조림해야만 탄소 흡수 기능이 올라간다는 것도 낯설지만, 무엇보다 탄소를 흡수 저장하는 숲을 보호하기 위해 숲을 파괴하는 역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숲이 사라졌다. 실제의 숲이 파괴된 것은 탄소중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벌목을 추진한 산림청의 전략에서 ‘숲의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산림을 보호해야 할 산림청이 산림을 파괴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상에 다시 주목하게 된 데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지난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기조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한 산림 협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의 온실가스를 감축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산림녹화산업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단으로 본 것이다. 세계산림총회와 연계해 열린 이 총회에서 100개국이 적어도 2030년까지 삼림벌채를 중단한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나무는 보고 숲은 못 본다더니
삼림경영 위해 삼림 파괴에 의아
숲은 그 자체가 다양성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생태학적 시각 회복되길 기대

산림은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글로벌 탄소중립에 매우 중요하다. 숲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벌목은 대기 보호를 약화하고, 기후변화를 촉진한다. 매년 배출된 온실가스의 약 3분의 1이 산림에 의해 흡수되고 저장된다. 그런데도 숲은 전 세계에서 줄어들고 있다. 최근의 빙하기 이후 지구 전체 수목의 3분의 1이 사라졌으며, 지금도 1분마다 축구장 27개 크기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추산에 의하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남한 면적에 해당하는 숲이 사라졌다.

산림파괴가 위협하는 것은 기후만이 아니다. 수많은 생명체의 생활공간이 사라진다. 숲은 중요한 생명의 공간으로서 중요한 생태계이다. 과도한 벌목으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 종의 다양성이 위협받는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이제는 상식이 된 것처럼, 산림의 파괴는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균이 쉽게 전파되도록 만든다. 물론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삼림이 파괴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아마존강 유역과 동남아시아 메콩강 유역 및 인도네시아의 열대우림이 지속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산림을 벌목한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기 위해 나무를 베어낸다. 목재를 경제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벌목하는 경우보다 농업, 축산업, 광업 또는 거주지 건설 등과 같은 다른 이유로 벌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목재의 주요 수출국이 산림을 비교적 잘 관리하는 북미와 유럽연합의 국가 및 러시아인 반면, 다른 지역의 벌목은 대부분 산림의 파괴로 이어진다. 우리가 커피와 카카오 또는 새우를 값싸게 즐길수록 이를 수출하는 국가에서는 산림이 더욱더 많이 파괴된다.

숲은 생명을 위해 보호되어야 한다.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나라는 숲을 생명의 공간으로 신성시하는 샤머니즘의 전통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황폐해진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바꿔놓은 성공적 조림의 경험이 있다. 화전을 일구거나 산에서 땔감을 구하는 일은 이제 아득한 옛일이 되었다. 그런데 때아닌 민둥산이 나타난 것이다. 탄소중립이라는 명목으로 숲을 파괴한 것이다. 산림청은 이를 ‘산림경영’이라고 부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우리 속담에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산림경영을 위해 삼림을 파괴하는 역설적 상황을 설명하기에 딱 맞는 말이다. 첫째, 탄소중립 산림경영은 전체는 보지 못하고 부분만 보려고 한다. 여기서 부분은 나무의 총량이다.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부각한 지난 세기 후반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본래 산림학적 용어이다. 18세기 농업과 광업의 발전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목재의 수요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원칙이었다. 매년 새로 심는 어린나무의 숫자보다 더 많은 나무를 벌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속가능성의 원칙이다. 산림청이 베어내는 나무보다 더 많은 30억그루를 새로 심는다고 했으니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나무를 심으면 저절로 숲이 되는 것인가?

둘째, 탄소중립의 산림경영은 지극히 기능주의적이다. 숲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목재에는 나무들이 광합성 작용을 통해 공기의 이산화탄소에서 얻은 상당한 양의 탄소를 함유하고 있다. 1㎥의 너도밤나무에는 평균적으로 약 340㎏의 탄소가 들어 있는데, 이는 나무가 공기에서 흡수한 대략 1.25t의 이산화탄소에 해당한다. 물론 이것은 단지 계산상의 수치일 뿐이다. 나무의 탄소 흡수 기능은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이산화탄소는 나무의 줄기와 가지와 뿌리, 그리고 토양에 저장되기 때문에 숲에 있는 나무의 크기와 밀도에 따라 달라진다.

나무의 나이도 커다란 역할을 한다. 산림청은 40년 이상 된 나무들의 탄소 흡수량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고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젊은 숲이 오래된 늙은 숲보다 탄소를 적게 저장한다. 지리적 위치도 중요해서 나무들이 빨리 자라는 열대림이 우리의 숲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한 산림연구기관은 한 그루의 나무가 얼마나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고 천명한다. 탄소중립 산림경영은 나무의 탄소 흡수 기능만 보았지, 숲의 역할은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다.

셋째, 탄소중립의 산림경영은 숲의 다양한 가치를 획일화한다. 여기서 경영은 경제학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어린나무를 심는 것을 오직 경제적으로만 정당화한다. 목재를 이용하니 이익이고, 탄소 흡수기능을 높일 어린나무로 대체하니 이익이란다. 여기에는 생명의 공간인 숲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우리가 멀리 떨어진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걱정하는 것도 지구의 생명 때문이다. 숲을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효용을 넘어선다. 그것은 다양한 생명이 균형을 이루고 공존하는 생태계를 보존하는 일이다. 목재의 경제적 가치가 높을 때는 숲에서 목재가 될 만한 나무만 보고, 탄소중립이 국가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때는 숲에서 탄소 흡수 기능만을 본다면, 그것은 숲의 다양한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다.

숲은 그 자체가 다양성이다. 숲에는 다양한 동식물이 살 뿐만 아니라 아름드리 고목과 어린나무도 잘 어울린다. 숲의 기능 역시 다양하다. 숲은 아름다움의 미학적 가치도 있고, 바라보는 사람에게 안정과 평화의 느낌을 주는 정서적 가치도 있다. 그런데 베는 나무 나이 기준인 ‘벌기령’(伐期齡)을 정해 일정 나이 이하의 나무로만 조성한다면, 그것은 숲이 아니다. 이번에 산림청이 벌기령을 폐기하고 산림분야 탄소중립 전략을 수정하였다니 정말 다행이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생태학적 시각이 회복되길 바란다. 숲을 보지 못하고 편협하게 나무만 보면 좋은 의도도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민둥산이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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