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을 멈추라

송기호 변호사

오는 8일은 미국이 요구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공급 영업비밀 제출 마감일이다. 미국은 자발적인 이행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자발성을 포장한 사실상의 강요이다. 일방적인 마감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강요임을 증명한다.

송기호 변호사

송기호 변호사

조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공급이 미국의 국가안보문제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미국산 자동차가 미국 국가안보에 필수적이다’라는 포고를 발표하던 2019년의 도널드 트럼프가 떠오른다. 그런데 국제통상 영역에서는 트럼프가 아직 백악관에서 집무를 보고 있다. 트럼프가 미국을 방위하려면 알루미늄이 필수적이라며 외국산에 매겼던 관세폭탄은 여전히 살아 있다.

미국의 주장처럼 반도체가 곧 국가안보라고 하자. 그렇다면 한국에도 그렇다. 반도체의 생산과 공급에 관한 내부 비밀은 한국에도 국가안보 사항이 된다. 미국의 논리대로 하더라도 한국은 반도체 비밀 제출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국제법적 권리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제23.2조는 어느 나라도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자발적 이행이라고 겉을 꾸미지만 WTO 판례는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않는다. 어떤 요구나 규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업과 개인의 경제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실질적 효과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잘 알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여 1994년 출범시킨 WTO는 영업비밀을 통상법으로 보호하는 최초의 국제통상질서이다. 영업비밀을 보호하지 않는 나라에 대하여 합법적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WTO를 미국과 같이 지식재산권을 창출하는 경제가 거둔 중대한 승리라고도 한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의하면 영업비밀 보호는 혁신과 투자 증진에 매우 중요하다. 미국 기업들에 대한 조사에서, 지식재산권 중에서 영업비밀이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한 비율이 미국 전 산업 평균으로 58.3%였다. 이는 특허, 상표, 저작권 등 다른 분야의 지식재산권에 비교하여 훨씬 높은 비율이었다. 컴퓨터나 전기 전자 산업에서는 70.6%의 미국 기업이 영업비밀이 매우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것이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164개 WTO 회원국들의 통상법적 의무가 되었다.

그러나 바이든은 중국을 가리키면서 중국 ‘공산당’에 반도체를 계속 공급할 거냐고 묻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를 수입하는 거래처는 중국 회사들이다. 그래서 미국에 되묻는다. 삼성과 SK에 중국 기업과 거래한다는 이유로 영업비밀을 미국에 제공하라고 하는 미국은 왜 화웨이를 중국 정부에 영업비밀을 제공할지 모른다는 이유로 제재했는가? 만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중국 관련 영업비밀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제재를 받는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의 제재에 뭐라고 논평할 것인가?

미국은 오랫동안 안보문제는 해당 나라의 주권으로 국제통상법이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WTO는 안보를 내세운 어떠한 일탈이나 예외에 대하여 재판할 권한이 없다고 강변했다. 그래서 미국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년 전에 한국으로 반도체 원료를 수출하는 것을 규제한 사건에서도 이 논리로 일본을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WTO는 2019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건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였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WTO 협정 의무를 벗어나는 것도 WTO의 심리를 받아야 한다. 본질적인 국가안보 사항이라는 점에 대한 설득력 있는 객관적 근거가 있는지를 WTO가 심리한다고 판정했다. 미 행정부는 삼성과 SK가 반도체를 중국 회사에 수출하는 것이 어떻게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지에 대해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트럼프와는 달리 규칙에 근거한 국제통상을 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오래전부터 기고하였듯이 중국의 인권 발전을 강력히 희망한다. 고도성장에서 소외된 중국 인민을 위해 변론하는 인권변호사가 체포되고 그를 변론하는 변호사마저 다시 체포되는 상황은 보편적 인권의 관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가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과제는 절박하다. 그러나 이것은 반도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미국은 말로는 규칙에 근거한 통상을 내세우면서 행동으로는 통상 규범의 입구 바깥에서 삼성과 SK에 영업비밀 제출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짓을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을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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