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의 선택이 ‘이재명 아니면 윤석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는 소식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누가 후보가 되든 좌파가 대선정국에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어서다. 민주진영의 이재명 후보나 보수진영의 윤석열 후보 둘 다 좌파의 선택지에는 있을 수 없고, 진보 진영의 심상정 후보를 두고서나 논쟁하게 될 줄 알았다.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강남규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위원

그게 참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윤 전 총장의 승리가 확정되고 나서 좌파계열 학생운동단체인 ‘전국학생행진’에서 후보 선출을 “기념”(이 표현은 곧 수정됐다)한다며 입장문을 냈다. 비꼬는 거겠지 싶었는데, 충격적이게도 “좌파의 선택은 정권교체여야 한다”면서 윤석열을 지지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주장은 충격적이었고 논리는 황당했다. 입장문의 거의 대부분을 민주당 비판으로 채워놓고 윤 후보 얘기는 짧게 몇 단락 할애하고 있을 뿐인데, 요컨대 윤석열 후보는 ‘합리적인 자유민주주의자’이고, 따라서 ‘포퓰리스트’ 이재명 후보보다 나은 선택지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라든지 육체노동을 폄하한 윤 후보의 반노동적 인식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 것은 우스웠다. ‘이재명 아니면 윤석열’이라는 낡은 프레임을 좌파 학생운동단체가 어떤 논증도 없이 답습하는 것은 한심했다. 그 논리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여기서 더 부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선거에서 반드시 누군가를 지지할 필요는 없으며 이재명과 윤석열이 유이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 뻔한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둘 중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입장문을 비판하는 또 다른 학생운동단체의 입장문 역시 이 함정 속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좌파계열인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의 것인데, “체제 안정을 지향하는 것은 좌파의 자세가 아니”라면서 이재명의 당선이 사회운동세력의 사기를 높여줄 것이라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명시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지만, 이 입장문에 다른 선택지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이재명을 지지하겠다는 얘기로밖엔 읽히지 않는다.

좌파라고 그들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결정에 다다르기까지의 논리가 얼마나 타당하냐는 점일 테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단체의 결정은 같은 문제의 다른 버전이다. 지지후보는 다르지만, 둘 다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던져진 두 가지 선택지 중에 반드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 전제 위에서 한 단체는 포퓰리스트 대신 자유민주주의자를, 다른 단체는 자유민주주의자 대신 포퓰리스트를 뽑는 게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다. 좌파 운운하면서 주장하기엔 너무 민망하고 초라한 결론들이다.

이들에게 진보진영인 정의당과 심상정이 선택지로 언급도 되지 않는다는 점은 안타깝다. 진보정당 지지자로서, 무엇이 이들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는지 성찰하고 개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일에 분노와 함께 씁쓸함이 밀려든 건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마냥 자아성찰만 하기엔 두 단체의 결정은 너무 보잘것없는 것도 사실이다. 좌파라면, 그리고 사회운동단체라면 놓여진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게 아니라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어내려 애쓰는 편이 맞지 않을까. 얼마 전에는 몇몇 활동가들이 모여 “다른 세계로 길을 내기 위한 사회운동”을 고민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노동, 여성, 장애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들이 모여 “체제를 바꾸기 위한 공동의 논의와 운동”을 논했다. 이들은 굳이 ‘좌파의 선택’이니 ‘좌파의 자세’니 운운하지 않지만, 저들 단체들보다 훨씬 더 그것에 어울리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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