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술핵 재배치 논의의 위험성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최근 일부 야당 대선 주자들이 전술핵 재배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나토식 핵공유를 모방한 한·미 간 핵공유 또는 한·미·일·호주 등 다자 형태의 ‘아시아판 핵기획그룹’을 구성하여 핵 대 핵 구도로 북핵에 대응하겠다는 모양새다. 북한의 핵능력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남북 및 북·미 대화의 교착 상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강한 군사력을 내세우는 안보 공약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

하지만 전술핵 재배치는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최근 국정감사에서 “지금 미국은 전술핵 배치를 고려한 적이 없고 고려 의향도 없고,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전술핵 재배치는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첫째, 1992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이후 우리가 견지해 온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스스로 훼손하는 행위이다. 지난 30년간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을 수포로 만드는 것이다.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할 명분이 약화되고,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이행할 동력을 잃을 수 있다.

비핵화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규범이자 약속이다. 우리는 그동안 국제규범을 모범적으로 준수하는 국가로서 국제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우리 정부가 다시 전술핵을 재배치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과 핵확산의 비도덕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국제사회에서의 지위도 축소될 수 있다.

둘째, 전술핵 재배치가 우리 안보를 증진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남북 간 핵군비경쟁 가속화에 따라 평화프로세스는 좌초하고 적대와 대결 구도가 재현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핵억지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은 안보 정세 불안에 대응하여 핵능력 강화에 더욱 매진할 가능성이 크다.

동북아 핵도미노 현상을 촉발하면서 안보 불안을 심화시키고, 원치 않는 핵전쟁에 연루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를 고착화시켜, 한반도를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만들 수 있다.

셋째, 우리 사회 내 소모적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2017년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당시 중국은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경제 보복으로 대응했다. 미국과의 핵공유는 더 강도 높은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압박과 보복을 유발할 것이다. 전술핵 재배치 결정이 정세 불확실성을 키우고 국민의 안전뿐 아니라, 개개인의 경제적 이익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설사 전술핵 재배치를 결정했다 하더라도, 실제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는 여전히 일부 단체와 주민들의 반대 시위로 원활한 물자 반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 또는 동북아에서 군사적 분쟁이 발생한다면, 남한 내 전술핵 기지가 적대국의 최우선 표적이 될 수도 있는데, 과연 어느 지자체와 주민들이 전술핵 기지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넷째, 남한 내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하더라도 전술핵 사용의 실질적 권한은 여전히 미국이 독점할 것이다. 1966년 결성된 나토의 핵기획그룹은 회원국 사이의 핵정책을 기획·논의·결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각국 국방장관들로 구성된 상설기구이다. 이를 통해 나토 회원국들은 핵정책 논의에 참여할 수 있으나, 전술핵의 공격 목표, 시기 등 핵심 사항을 결정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 전술핵 탄두를 항공기에 실어 적군에 투하하는 임무가 주둔국 공군에 부여될 뿐이다.

또한 ICBM이나 핵잠수함, 장거리 폭격기 등 전략무기 체계가 고도로 발전한 상황에서 유럽 내 전술핵이 갖는 군사적 함의는 크지 않다. 따라서 유럽에 배치한 미국의 전술핵은 군사적 준비태세 강화를 위한 목적보다는 동맹 방어에 대한 미국의 공약과 정치적 의지를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초 워싱턴포스트에는 북한의 미국 본토 공격력 과시로 인한 미국 핵우산의 신뢰도 약화와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필요성을 제기하는 미국 전문가의 기고문이 실린 바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한 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국제적 고립과 군사적·경제적 위기가 닥칠 것이 자명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핵무장은 결코 선택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핵은 핵으로만 억제할 수 있다는 주장은 일종의 맹신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지구의 모든 국가가 핵을 보유해야 비로소 핵 위협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올 것인데, 현실이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흔들림 없이 지켜가야 할 목표는 핵 없는 한반도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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