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민영화

이범준 사회에디터

금전을 두고 다투는 민사재판은 사인과 사인의 싸움이다. 자기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각자 최선을 다한다. 소송 준비를 하지 않아 패소해도 자기 탓이고, 지나친 변호사 비용을 들이는 것도 자기 책임이다. 변호사 비용 빼면 남는 게 없는 민사소송을 하는 이도 있지만, 변호사 좋은 일만 시키든 말든 누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변호사 대부분은 민사소송으로 먹고산다. 이렇게 금전을 두고 대신 싸워주는 변호사를 대리인이라고 부른다.

이범준 사회에디터

이범준 사회에디터

형사재판은 다르다. 변호사를 부르는 이름부터 대리인이 아니라 변호인이다. 당사자 대신 변호사가 출석해도 되는 민사재판이 아니다. 상대가 수사기관 즉 국가이고, 소송물도 금전이 아니라 처벌이다. 생살여탈권을 가진 국가에 대한 방어력이 경제력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그래서 국가의 기소를 다시 국가가 방어하는 제도가 나라마다 있다. 미국의 퍼블릭 디펜더가 대표적이고, 일본의 제1심 형사재판 변호인의 83.8%(2017년)가 국선이다.

요즘 형사재판 불평등은 수사 단계에서 벌어진다. 고소대리라는 신종 비즈니스가 등장하면서다. 수사력 동원을 상품으로 만들어 범죄 피해자에게 파는 일이다.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의 권한이고 의무이다. 사인이 스스로 보복하지 않고 국가에 맡기면서 근대 국가가 시작됐다. 고소대리는 사적보복 금지를 교묘하게 허무는 영업이다. 고소장을 내주고 얼마, 구속되면 또 얼마, 유죄가 나오면 또 얼마를 받는다.

고소대리는 범죄의 발견과 처벌이라는 국가기능을 시장논리로 오염시킨다. 한정된 공권력인 수사력 분배에 돈으로 움직이는 변호사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고소대리 변호사들이 우리는 법률관계만 정리해 줄 뿐 수사 결과를 뒤집는 목적까지는 아니라고 한다면, 피해자의 궁박을 이용해 사기를 쳐온 셈이다. 경찰과 검찰에 변호사가 작성한 고소장이 늘면서 직접 고소장을 작성하는 피해자는 홀대당하고 있다.

고소대리는 형사처벌을 수입원으로 삼기에 부당한 유죄로 이어지기 쉽다. 부당한 무죄를 감수하더라도 부당한 유죄를 막으려 설계된 근대 형사제도를 허문다. 고소대리로 유명한 어느 변호사에 관한 최근 한겨레 보도를 보면, “어차피 차 안의 상황은 아무도 모르고 블랙박스도 없어. … ‘격렬하게 저항했다. 최선을 다해 밀었고, 그 사람 몸에도 멍이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는 거야)”라고 의뢰인에게 고소대리 사례를 설명했다. 손해배상을 준비하면서다.

고소대리의 성격은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면서 드러난다. 고소대리 변호사가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낸 다음, 의뢰인의 주장을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공개하는 식이다. 이렇게 해서 신분이 알려진 피고소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는데, 고소대리 변호사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경찰에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이런 경우 공소제기가 불가능한 수사기록이지만 성공보수가 걸린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근거자료로 쓰일 수도 있다.

고소대리 시장의 최고 수혜자는 검찰 전관, 최근에는 경찰 전관이다. 이들 변호사에게 적잖은 돈을 줘가며 고소대리를 맡기는 이유는 형사와 특히 이후 민사에서 이기기 위해서이다. 수사기관이 공정하다는 신뢰가 없으니 안면이 통하는 변호사를 중간에 세우는 것이다. 고소대리 변호사가 먼저 수사기관을 불신하도록 부추기고 특혜를 장담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소대리는 공권력 불신을 연료로 삼는 비즈니스이다.

전관이 아닌 변호사는 언론을 이용한다. 고소대리 변호사를 가리켜 피해자를 변호한다고 하거나, 피해자 변호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추켜세우는 기자들이다. 이들은 미확정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도구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결과적으로 고소대리 변호사의 수입을 올려준다. 처음부터 선악을 갈라놓고 쉽게 일하는 게으른 기자와, 그런 언론을 이용해 이름을 알리고 이문을 챙기려는 영악한 변호사의 공생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변호인이 피의자·피고인과 맺은 성공보수 계약이 무효라고 2015년 판결했다. 이 판결에는 고소대리 성공보수 계약이 훨씬 나쁘다는 내용이 있다. “피해자·고소인을 대리하면서 피의자·피고인의 구속을 성공의 조건으로 내세운 약정의 경우에는 국가형벌권을 빌려 ‘남을 구속시켜 주는 대가’로 상당한 금액을 수수하는 것이어서 이러한 불합리함이 더더욱 드러나게 된다.” 고소대리는 수사권 민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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