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변동기 동맹 독법

미·중 신냉전에 대한 우려가 높다. 사실 미국은 3C 정책이라며 글로벌 가치 사슬의 재편 과정에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 대결(Confrontation) 정책이 동시에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며 냉전의 의도성을 부인한다. 반면 중국은 대결과 협력이 공존한다는 레토릭 자체가 불순하다며 반발한다. 중국은 대만 문제 등 핵심 이익을 미국이 인정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협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난 15일 미·중 화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도 분분하다. 시진핑 주석이 대만 문제에 대해서 사용한 “불장난하는 자는 스스로 타죽는다”라는 강경 표현에 주목해 회담 실패론을 강조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실패론은 회담 이후 번지는 미국의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론을 예로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일본이나 대만 같은 곳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독립에 대해 기존의 방침에서 후퇴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미·중경쟁관계가 디커플링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리커플링 과정이라며 냉전론을 부인하는 시각이 많다. 반면 국방 관련 인사들은 가장 격렬하게 미·중 간 신냉전을 예고한다. 강대국 정치의 어느 경험 공간에 있는가에 따라 각자의 체감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같은 인식의 차이는 자연스럽다.

한때 바이든 대통령 당선 직후 미국 내 양극화 현상이 극에 달하자 전 지구적으로 미국의 동맹마저 민주당 동맹과 공화당 동맹으로 나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중산층 중심의 외교론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중국 위협론에서 미국의 초당적 외교론은 더욱 강력해 미·중 간 전략 경쟁을 국제 질서의 근본 구조로 보는 시각이 대세이다. 이번 화상 정상회담에 대한 내리막길론이 워싱턴에 여전한 이유이다.

그렇지만 잠시 눈을 돌려보자. 트럼프 행정부 시절 앙겔라 메르켈의 독일은 한때 미국과 거의 결별 수순까지 갔다는 평가가 나돌았다. 사사건건 대립하는 트럼프와 메르켈이 화해할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는 것이고 미국의 유럽 동맹 재편이 불가피하다는 논리가 고개를 들었다. 지금 독일은 사민당으로의 정권 교체 논의가 진행 중이고 독일과 미국 모두 동맹을 대하는 새로운 외교 노선을 두고 눈치 싸움이 한창이겠다.

프랑스는 오커스(AUKUS) 동맹으로 화가 단단히 났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앵글로 색슨 동맹이 미국의 성골 동맹이고 파이브 아이즈의 성원인 캐나다, 뉴질랜드가 진골 동맹이라면 기타 유럽 동맹이나 한·미, 미·일 동맹은 육두품이라는 비아냥이 있다. 육두품으로 분류되는 동맹들이 갖게 될 상실감이 어떤 나비효과를 낳을지가 글로벌 외교의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율이 본격적으로 기울기 시작한 건 아프간 철군 건이었다. 바이든표 철군 외교는 준비 부족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국내외에서 뭇매를 맞았다. 이는 미·중 간 전략 경쟁이 국제 질서의 근본 구조이고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중심이 중국과의 힘겨루기가 되어야 한다는 발상에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사례들이다.

이제 한반도로 돌아오자. 2019년 여름 일본의 느닷없는 수출통제조치는 한국 외교의 기조를 흔들었다. 이후 우리는 2020년 1월에는 코로나19에서 비롯된 마스크 대란을 겪었고 2021년 봄엔 백신 부족으로 또 한번 서러움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은 요소수 사태로 여론이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 리스크가 한국에 얼마나 중요한 안보 요인인가를 똑똑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동맹 관리도 중요하지만 예측 범주 밖에 있는 이슈가 쓰나미로 몰려올 때 어떤 탄력성을 보일 수 있는가 하는 비상대응능력이 동맹관리만큼이나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는 뜻이다.

미·중 리스크는 상수가 된 지 오래다. 낙관도 비관도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외교는 국방이 아니므로 둠스데이(doomsday) 시나리오가 출발점이 될 수는 없다. 외교는 또한 행정이 아니다. 행정은 정상과 제도의 영역에서 역할을 한다면 외교는 비정상과 결단의 영역에서 빛을 발한다. 지금 글로벌 K시리즈는 경제·통상·문화·외교 전 영역에서 성장통을 앓고 있다. 비상대응능력을 이만큼 키워온 우리 외교가 다시 미·중 대결 구조론에 휘둘리는 왜소증에 빠져들 이유는 없다. 동맹 몰입외교의 보상 심리에 매달리거나 방기의 우려에 빠져 동맹의 발목이나 잡는 사례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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