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버스터즈’ 실패 이유

백승찬 문화부 차장

이달 초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는 1980년대 인기작 <고스트버스터즈> 시리즈의 후속작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살던 시골집으로 갑자기 이사간 남매의 모험담을 그렸다.

백승찬 문화부 차장

백승찬 문화부 차장

이 영화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고스트버스터즈>의 핵심은 유령과 유령 사냥꾼의 대결이다. 사냥꾼들이 때로 귀엽고 때로 흉칙한 유령을 우스꽝스럽고 요란하게 잡는 과정에 영화의 재미가 있다.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엔 이상하게도 유령이 너무 늦게 등장한다. 영화가 중반에 이르러서야 첫 유령이 목격되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린 남매는 유령을 퇴치하기는커녕 도망치기 바쁘다. 시리즈의 핵심 재미를 잊은 듯한 구성이다.

첫 유령이 나타나기 전까지 남매는 할아버지의 유산을 탐구한다. 옛 고스트버스터즈의 일원이었던 할아버지는 다시 나타날 유령에 맞서기 위해 죽는 날까지 홀로 대비해왔던 것이다. 남매가 할아버지의 유니폼, 차량, 사냥도구 등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상영시간이 흘러간다.

<고스트버스터즈> 2편이 나온 뒤로도 31년이 흘렀다. 1980년대 <고스트버스터즈>의 팬이라면 향수를 부르는 소품들이 나올 때마다 가슴이 뛰겠지만, 대부분 젊은 관객은 원작을 본 적도 없다. 제작진이 앞장서 선대의 유산에 흥분하고 찬탄하는 전개에 관객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가 옛 시리즈 팬들의 향수를 만족시키는 영화를 넘어서길 원했다면 후속 세대의 활약에 조금 더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 영화의 감독 제이슨 라이트만은 원작의 감독인 이반 라이트만의 아들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업적에 존경을 표하는 건 가족 내에선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영화감독의 효심을 확인하기 위해 극장에 가는 사람은 없다.

최근 개봉해 팬데믹 상황에서도 유례없이 흥행 중인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전략은 다르다. 이 영화 역시 과거 시리즈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지만, 어디까지나 새로운 스파이더맨의 활약을 중심에 둔다. 오랜만에 나타난 옛 캐릭터들은 젊은 스파이더맨을 위한 조연 기능에 충실하다. 이야기 역시 극심한 인터넷 여론 재판 등 동시대 상황을 발단으로 시작한다.

과거의 업적을 기억하고 그 핵심을 이어받는 건 중요한 일이지만, 이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용하다는 전제 아래서만 필요하다. 찬란한 과거에 감탄하며 시간을 보내기엔 사회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고스트버스터즈 라이즈>에서는 30~40년 전 유령이 그대로 나타났기에 옛 무기로도 퇴치할 수 있었다. 당면한 현실의 기후변화, 불평등 등 이슈는 과거에 없던 문제라 해결책도 새로워야 한다. 현재와 미래의 문제에 가장 민감한 이들은 청년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가장 곤란을 겪을 사람들도 청년이다.

청년은 문제 해결을 위한 권력의 당사자여야 한다. 기성 권력자가 시혜적으로 나눠준 권력은 언제든 빼앗길 수 있다. 청년들이 권력을 양보받을 게 아니라 탈취할 방안을 궁리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젊은 스파이더맨은 옛 캐릭터들에게 예의 바르게 협조를 구했다. 협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선량한 스파이더맨이라도 조금 더 과격한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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