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방역패스 유감

이호준 정책사회부 차장

코로나19가 터지고 나서 학교가 제일 먼저 문을 닫았다. 그사이 아이들은 각자 사정에 따라 제각각 보살펴졌다. 도우미가 상주해 저녁까지 챙겨주는 아이들도 있었고,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학원을 순회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또래들과 PC방을 전전하기도 했고, 별다른 조치 없이 혼자 방치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호준 정책사회부 차장

이호준 정책사회부 차장

아이들은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었다. 정부의 결정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할 수도 있었고, 동전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러도 문제가 없었다. 학원이나 도서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은 학교가 유일했다.

그런데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내년 2월부터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은 학원도, 도서관도, 독서실도 그 어느 곳도 갈 수 없게 됐다. 갑자기 백신을 맞지 않은 학생들이 갈 수 있는 장소는 학교가 유일해졌다.

손바닥 뒤집듯 정책이 바뀌었는데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는 쉽지 않다. 정부가 분주하게 움직이기는 했다. 장관에서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접종을 독려하고 간담회, 호소문 낭독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메시지가 전달됐다. “투명한 정보 공개로 우려를 불식시켜 드리겠다”는 설명이지만 정부가 개최한 간담회 대화창에는 “쇼를 집어치우라”며 조롱하는 댓글 폭탄이 수천개 쏟아졌다. 정부의 소통 노력이 조롱의 대상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청소년 방역패스 도입을 밝히면서 정부는 8주간의 유예기간을 예고했다. 접종 완료 일정을 고려하면 실제 주어진 시간은 3주다. 크리스마스 전에 1차 접종을 끝내야 한단다. 촉박한 일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당연한데도 정부는 충분히 시간을 줬다며 생색을 낸다. 기말고사 일정과 겹친다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찾아보니 며칠 여유가 있더라’며 날짜까지 찍어준다. 그사이 접종 편의를 지원하겠다며 학교에 찾아와 백신을 접종하는 작업도 시작됐다. 응급상황 발생을 우려하는 현장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고, 학교에서 단체 예방접종은 금지한다는 원칙도 무시됐다. 소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면 등교의 필요성을 강조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학습권이 대수냐는 식으로 메시지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백신을 맞히는 것이라고 했다가, 다음날에는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데 아이들도 기여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안전이 그렇게 중요한데 감염경로 2위인 학교는 왜 보내야 하느냐는 조롱이 터져나오는 배경이다.

정부의 다급함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난 2년 재정과 인력을 갈아넣으며 겨우 얻어낸 일상이 다시 위험에 처했으니 당연하다. 아쉬운 것은 소통과 대응 방식이다. 백신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는 그 어느 나라보다 단단하다. 없어서 못 맞았지, 있는데 안 맞는 경우는 드물었다. 성인 접종완료율 90%가 무얼 의미하겠는가. 백신에 대한 불신이 문제가 아니다. 손바닥 뒤집듯 뒤집힌 정책에 적응하고 반응할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다.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12~17세 1차 백신 접종률은 어느새 50%를 넘어섰다.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주변을 살피며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할 기회를 줘야 한다. 겨우 3주의 말미를 줘놓고 ‘이래도 안 맞고 버틸 테냐’는 식으로 찍어누르다 오히려 불신만 가중시킬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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