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기 상장’도 제재 받을까

조미덥 산업부 차장

한국에서 어떤 행위를 ‘쪼개기’로 표현한다면, 나누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어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이익을 얻는 꼼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조미덥 산업부 차장

조미덥 산업부 차장

최근 뉴스에 나온 예를 보자. 대장동 개발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수사팀은 지난달 사적모임 제한(10명)을 어기고 15명이 2개의 방에 나눠 ‘쪼개기 회식’을 하다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KT 전·현직 임직원들은 1인당 500만원인 한도를 무시하고 국회의원 99명에게 4억원대의 정치자금을 ‘쪼개기 후원’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2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 의무를 피하기 위해 수개월에 한 번, 심한 경우엔 한 달에 한 번 ‘쪼개기 근로계약’을 하는 업주들의 관행은 법원의 판결에 의해 잇따라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렇듯 쪼개기에는 처벌과 제약이 뒤따른다. 방치하면 코로나19 방역, 투명한 정치후원 제도, 고용 안정 등 사회 제도가 목표하는 바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최근 재계의 이슈인 ‘쪼개기 상장’은 어떨까. 쪼개기 상장은 미래 성장동력이 큰 알짜 사업부를 자(子)회사로 분리한 후 자회사를 따로 상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자회사엔 투자가 몰리지만, 모(母)회사는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 모회사는 알짜 사업을 직접 영위하지 않고 자회사 지분도 새 주주들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알짜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한 SK케미칼, LG화학, CJ ENM, 만도 등의 주가가 최근 급락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회사 주주들이 떠안게 된다.

쪼개기 상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난다. 미국에선 보통 지주사나 지배구조의 상단에 있는 회사를 상장하고 자회사는 상장하지 않는다. 모회사와 자회사 주주들끼리 이해가 충돌하면 거액의 소송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한국과 반대로 모회사가 상장돼 있으면 자회사는 상장폐지하는 분위기다. 주주 간 이해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일본 최대 통신사 NTT도코모와 편의점 패밀리마트, 소니의 자회사 소니파이낸셜홀딩스가 그런 이유로 상장폐지됐다.

유독 한국에 쪼개기 상장이 많은 것은 드라마 <송곳>의 명대사처럼 “여기선 그래도 됐기 때문”이다.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작으니 그들의 손해를 무시해도 별 탈이 없다. 경영권 방어에 민감한 모회사 대주주는 자회사를 상장함으로써 자회사 지분을 희석시키는 대신 모회사의 지분율(의결권)을 지켰다.

하지만 2021년 말 한국의 쪼개기 상장이 마주한 현실은 예전과 크게 다르다. 지난해부터 개인 투자자가 빠르게 늘어 1000만명을 넘었다. 이들은 권리의식이 강해져 손해를 참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금은 ‘1주 1표’의 자본주의보다 ‘1인 1표’의 대선이 지배하는 국면이다. 다수인 개인 투자자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다. 당장 이재명·윤석열 대선 후보 측은 26일과 27일 연달아 자회사 상장 시 신주를 모회사 주주들에게 우선 배정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가 내년에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에 도전한다니 증시 제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려 할 유인이 크다. 쪼개기 상장에 의한 국민연금 손실은 개혁의 명분이 된다. 이래저래 쪼개기 상장도 쪼개기 회식, 쪼개기 후원처럼 법의 제재를 받을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Today`s HOT
올림픽 성화 도착에 환호하는 군중들 러시아 전승절 열병식 이스라엘공관 앞 친팔시위 축하하는 북마케도니아 우파 야당 지지자들
파리 올림픽 보라색 트랙 첫 선!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티 아이들
폭격 맞은 라파 골란고원에서 훈련하는 이스라엘 예비군들
바다사자가 점령한 샌프란만 브라질 홍수, 대피하는 주민들 토네이도로 파손된 페덱스 시설 디엔비엔푸 전투 70주년 기념식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