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의 진화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많은 국민들이 오해하는 헌정사적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 헌정에서 대통령제의 시작에 대한 역사다. 흔히들 제헌헌법의 정부형태를 대통령제로 기억한다. 원래 내각제를 구상했던 유진오안이 이승만의 몽니 때문에 막판에 대통령제로 바뀐 것이라는 야사가 회자되곤 한다. 대통령을 행정권의 수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굳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제 하면 연상하는 소위 대통령‘중심’제가 아닌 것은 분명하고 굳이 따지자면 내각제에 더 가까웠다고 볼 여지도 많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무엇보다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하는 구조였다. 국회에서 정부 수반을 선출하는 권력구조는 내각제 아니던가? 더더구나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대통령이 단독으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없었다. 내각에 해당하는 국무원을 대통령과 국무총리, 국무위원의 합의체로 설치하고 대통령의 권한에 속한 중요 국책을 ‘의결’할 권한을 부여하였다. 국무원이 의결한 사항은 대통령도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대통령직 승계 1순위인 부통령이 국무원의 구성원이 아니라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국무원의 부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만 하는 국무총리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명에 따라 행정각부 장관을 통리감독한다. 한마디로 국정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는 국무총리와 국무원이 국회와 협력하면서 헌법상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왜 우리는 제헌헌법의 정부형태를 그냥 대통령제로만 기억하는 것일까? 헌법이 결단한 구도와는 다르게 헌정이 운용되었기 때문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헌법의 내각제적 요소를 무시하고 미국식 대통령제처럼 국정을 운영하였다. 총리나 국무원은 헌법상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 선출방식만큼은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국회간선제를 국민직선제로 바꾸기 위해 한국전쟁의 와중에 소위 발췌개헌을 감행하였다. 직선제안과 내각제안을 조합한 발췌개헌은 국회간선제를 폐지하면서도 총리에게 국무위원 제청권을 부여하고 양원제를 채택하여 내각제 요소도 강화했다. 그런데 정작 헌정운용은 대통령 독재의 방식이었고 양원제는 시행되지도 않았다.

그 이후의 헌정사가 본격적인 대통령제의 시작이다. 4·19로 독재자는 망명길에 올랐고 내각제를 도입한 개헌이 이뤄졌지만 5·16쿠데타로 내각제는 단명하였다. 1962년 헌법은 국무회의를 ‘심의’기관으로 격하하는 등 대통령중심제를 강화하였다. 그나마 민주적 대통령제를 표방하던 이 헌법이 1969년 3선개헌으로 독재적 대통령제의 전조를 알리더니 1971년 유신쿠데타를 거치면서 명실상부한 독재적 대통령제로 전락하였다. 5·17쿠데타의 결과물인 소위 5공헌법이 유신의 독재적 대통령제를 답습하였다가 6월항쟁에 의해 현행 헌법의 민주적 대통령제로 복원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권력을 대통령을 맡은 공직자와 동일시하여 권력을 의인화하는 독재적 대통령제의 오랜 관행과 문화적 지체는 그 폐해가 지속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폐해에도 불구하고 7차례의 정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한국형 대통령제는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로 폄하하는 관성이 없지는 않지만 대통령이 국회나 국민여론의 지지없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다. 제도적으로도 대통령의 권한이 여전히 비대하다고 하지만 대개 법률로 통제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국회의 국정 통제는 지속적으로 강화되었으며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 국회에서 심의조차 되지 않을 정도이고 심지어 대통령의 탄핵사례도 생겼다. 제왕적 대통령의 화신처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총리를 제대로 경질하지 못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총리를 모두 정치인 출신으로 임명하였고 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활발히 하여 혼합형적 요소가 강화되고 있고 차기정부에서도 이런 경향은 쉽게 역진하기 힘들 것이다.

이제 대통령제의 진화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할 때다. 우선 독재적 대통령제가 발호함으로써 제헌헌법 이래 무시되었던 행정부 내부의 견제와 균형의 장치나 국회와의 협치를 강화하는 민주공화적 제도들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게 정치관계법을 개혁해야 한다. 국민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는 선거법, 정당법, 국회법의 개혁은 물론 국회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총리와 국무위원의 지위와 대통령의 관계를 헌법에 맞게 조정하는 정부조직법제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전투구 대선에 넋놓고 있기보다 국회와 국민이 주목해야 할 현안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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