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평행우주, 814명의 A씨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2021·12·1 11시경, 부두의 컨테이너 고정 구조물 결합작업 현장에서 강풍으로 인해 용접 부분이 파단되면서 교수 두 명이 11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하여 교수 A씨(35)가 숨짐.” “2021·12·1 11시56분경, 지붕 빔 철골 설치 현장에서 크레인으로 빔 철골 자재를 옮기던 중 돌풍에 의해 회전한 자재에 부딪혀, 지방자치단체장 A씨 사망.” “2021·12·1 8시30분경, 회사 건물 옥상에서 우수배관 규격을 확인하던 검사 A씨가 옥상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2021·12·2 9시8분경,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 현장 발코니 난간대에서 작업 중이던 대형 건설사 회장 A씨가 난간대가 떨어지면서 함께 떨어져 사망.” “2021·12·2 8시경, 다세대주택 신축공사 현장에서 윈치가 작동되지 않아 최상부에서 윈치 상태를 직접 확인하던 중 변호사 A씨가 바닥으로 떨어져 사망.” “2021·12·4 13시경, 벌목 현장에서 장비를 이용하여 목재를 운반하던 중 경사면에서 미끄러져 고용노동부 정책관 A씨가 장비와 함께 약 30m의 아래로 굴러 떨어져서 사망.” “2021·12·5 14시57분경, 아파트 공사 현장에 설치된 6m 높이 작업대에서 방음벽 설치를 하던 중 국회의원 2명이 떨어지는 사고 발생. 이 사고로 국회의원 A씨(50대)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이 중상을 입음.”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실시간 현장 생중계에 심층보도가 이어진다. 시시각각 희생자 숫자가 집계되고, 전광판 곳곳에서 전날의 희생자 숫자가 점멸한다. 여야가 따로 없고 부처 칸막이도 없다. 모두 머리를 맞대고 진상 규명과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학계와 재계도 한목소리로 강력 대응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의문에 휩싸인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연달아 일어날 수 있지? 정말 우연일까? 사회지도층을 표적으로 한 테러가 아닐까?

이제 K평행우주로 돌아오자. 사회지도층 인사 A가 모두 ‘노동자 A’ ‘근로자 A’로 바뀌어 있다. 뉴스들이 밋밋해졌다.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정부가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다. 새로울 것 없는, 늘 있는 일이니까.

앞의 인용문들은, 매일 언론 기사를 모니터해온 노동건강연대가 작년 12월1일부터 5일 사이에 확인한 노동자 사망, 그중에서도 추락으로 사망한 실제 사례들을 요약한 것이다. 작년 한 해에만 814명 A씨의 죽음을 확인하고 기록했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만 취합한 것이니 누락된 이들도 있다.

작년 11월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사망한 한전 하청업체 노동자 ‘김씨’의 사례도 빠져 있다. 최근에야 알려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죽음은 떨어짐, 끼임, 부딪힘, 물체에 맞음, 깔림처럼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 때문이다. ‘사회지도층’이 1년에 800명씩, 고귀한 업무 중에 이토록 어처구니없게 목숨을 잃는다면 사회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 A씨니까 괜찮다. 게다가 A씨는 협력업체, 하청업체 노동자, 비정규직, 일용직이다.

그래서 사건은 반복된다. 예컨대 크레인 붕괴, 아르곤가스 질식, 물류센터 화재 같은 대형 산재 기사들을 온라인에서 검색하면, 반드시 날짜를 확인해야 한다. 비슷한 여러 사건들이 있기 때문이다. ‘협력업체, 하청, 사망’ 키워드로는 사건을 특정하기조차 어렵다. “2021·7·28 9시52분경, 고소작업차를 이용해 전기 공사 중이던 한국전력공사 하청노동자 A씨(27)가 감전되어 사망.” 작년 7월의 기록이지만 11월에 ‘복붙’해서 재활용할 수 있다.

오늘날 인류의 기술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난제이기 때문에 이런 사고, 안타까운 죽음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되니까 반복될 뿐이다. 보건학에서는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건강문제가 집단들 사이에 체계적으로 다르게 발생할 때, 그것도 사회적 열세집단에 집중될 때, 불공정한 건강불평등이라고 정의한다. 지금 여기, ‘노동자 A씨들’의 죽음이야말로 불공정한 건강불평등의 교과서적 모범 사례다.


Today`s HOT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틸라피아로 육수 만드는 브라질 주민들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이·팔 맞불 시위 불타는 해리포터 성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