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만든 30분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지난해 11월24일 한국전력의 하청노동자 김다운씨가 일하다 고압선에 감전돼 죽었다. 전기가 혈관을 타고 심장을 관통해 머리에 불이 붙었다. 119 구급대가 도착해서도 활선차가 없어 구조가 지연됐다. 30분 넘게 10m 전신주에 매달려 있던 사진이 모자이크 처리된 채 언론에 공개됐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한국전력은 공공기관 최대의 산재다발사업장이다. 하청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마다 안전매뉴얼은 강화되었다. 2인1조 작업, 안전장비 착용, 사전위험성 평가, 작업계획서 등 한전이 마련한 안전장치들은 ‘배전작업 안전작업 수칙’과 같은 수많은 문서에 세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그럼에도 왜 김다운씨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홀로 일하게 되었나? 사고 직후 한전 측은 유가족에게 ‘눈에 뭐가 씌였는지 커버를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작업자가 의욕이 앞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태안발전소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했을 때도 발전사는 유가족에게 같은 말을 했다. 왜 사고가 났는지 잘 모르겠다는 ‘무관심’과 작업자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다는 ‘노동자 책임론’은 서로 어긋난 진술인 채로 반복된다. 원청의 무관심은 하청노동자의 사망에 책임이 없다는 사법적인 보호막이자 자기변론의 요체다. 그럼에도 한전의 무관심한 답변들은 기이할 정도로 천연덕스럽다. 김용균 사고 이후 특히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노동안전에 대한 각종 규제는 강화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목전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관심에는 나름 법적 근거가 있다. 배선작업은 건설공사로 분류되니 자신들은 ‘발주자’라는 것이다. 산업안전법상 발주자는 도급인(원청)과 달리 하청노동자의 안전을 직접적으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산재사망사고의 절반 이상이 건설노동자에게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공사 전반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발주자에 대해 법이 책임회피를 보장하고 있으니, 한전의 무관심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번 사망사고를 계기로 한전 사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한전 사장도 처벌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경고했지만 또 다른 책임회피용 발언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한전이 ‘발주자’라고 우겨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하청노동자의 작업 전반에 한전이 원청으로서 관여하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들은 수년간 한전이 발주처가 아니라 실질적인 원청이며, 반복되는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해 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자들의 주장에 무관심했다.

2019년 5월3일 하청노동자 송현준씨(30)가 전봇대 수리업무 중 안전장비 불량으로 추락해 숨졌다. 당시 유가족들은 노숙농성을 이어가며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지 6개월, ‘김용균법’이라고 불리던 산업안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된 지 4개월 만이었다. 김용균의 업무처럼 한전의 배전업무는 도급금지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산안법을 통과시켰던 국회는 또 얼마나 노동자들의 위험업무에 대해 무관심했던가.

무관심이 겹치고 겹쳐, 전봇대에 매달린 채 30분을 고통 속에 버티다 2021년 11월24일 김다운씨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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