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가 배은심의 마지막 투쟁

배은심 어머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주 수요일에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해도 될까 망설이며 걸었는데 여느 때처럼 전화를 받으셨다.

“어머니, 괜찮으신 거요?”

“으이, 내가 이번에 가는 줄 알았다야”고 하신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내려왔다고, 심혈관 세 개가 막혀서 그걸 뚫는 시술을 했다고 하셨다. 그랬던 어머니인데, 그제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배은심 어머니를 알고 지낸 게 35년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머니를 처음 본 것은 TV 화면에서였다. 이한열 장례식장에서 문익환 목사님이 열사들의 이름을 목놓아 호명했던 그 장례식에서, 전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었던 그 장례식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울부짖는 여인을 보았다.

“살인마들은 물러가라. 현 정부는 물러가라. 한열아. 다 잊어버리고 가거라. 이 많은 청년들이 너의 피맺힌 한을 풀어줄 거야. 안 되면 내가 풀겠다. 한열아. 가자 광주로. 한열아. 이제 광주로 가자.”

다음해인 1988년 나도 유가족이 되어 유가협(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현재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서 그 여인을 만났다. 꼿꼿한 허리만큼이나 깐깐한 성격의 배은심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최루탄을 제조하던 삼영화학에도,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을 왜곡 보도한 조선일보에도 혼자 뛰어 들어가서 뒤집어 놓고 사과를 받아냈다. 그러다가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대중투쟁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대중들 속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이 이한열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가협 회장으로 있을 때 용산참사가 발생하자 범국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다. 세월호참사가 나자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안아주었고, 촛불항쟁 때는 찬바람을 맞으며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난 아직 ‘어머니’ 명복을 빌 수 없다

어머니의 부고를 전하면서 이한열기념사업회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곳에, 인권탄압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참사로 가족을 잃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함께”하셨다고 어머니의 35년의 삶을 간결하게 정리했다.

유가협은 민주화운동, 인권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을 하다가 죽어간 이들의 단체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유가족들은 서울 동대문 창신동에 ‘한울삶’이란 작은 한옥을 마련하고 자식들의 영정을 벽에 걸어놓았다. 그곳 한울삶 유가족들은 처음에는 원통해 울기만 하다가 점점 자식들의 뜻을 알아갔다. 그곳에서 역사를 배우고, 운동을 배우고, 현장을 다니면서 세상을 알아가다가 결국은 세상을 바꾸려 했던 자식들의 뜻을 이해해가면서 활동가로 변모해갔다.

배은심 어머니는 “한열이가 못다 만든 세상을 내가 이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았고, “평등이란 게 세상사람 모두 어울려 사는 것 아니겠는가. 그게 민주화고 민주주의라 믿는다”고 아들의 뜻을 이해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와 함께 유가협의 삼총사로 불렸던 배은심 어머니는 자신이 이해한 아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헌신했다.

자식을 잃은 고통을 딛고 일어선 유가족들의 발언과 행동은 큰 울림을 주었고, 정치를 움직였다. 지금도 세월호참사 유가족이나 산재피해자 유가족들이 앞장서 활동함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는 “민주주의는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땀이 범벅되어 한 발짝씩 온다” 했나 보다.

한열이가 꿈꿨던 세상 만들려 헌신

유가족들은 지난해 10월19일자로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농성에 들어갔다. 20년째 진전을 보지 못하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그 농성장에서 만났던 배은심 어머니는 “다 늙은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법 만들자고 하냐. 나라를 위해서 죽었으면 나라가 거두어줘야지. 예전에 같이 싸웠던 동지들이 대통령 하고 국회의원 하면 뭐해”라고 일갈했다. 유가족들은 1998년에서 1999년까지 422일 동안 여의도에서 농성을 해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특별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해냈다. 이번에도 유가족들은 법 제정 이전엔 농성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배은심 어머니의 마지막 투쟁은 그렇게 이어질 것이다.

오늘은 배은심 어머니와 영영 이별하는 날이 아니라 치열하게 싸워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인권운동가로 기억하는 날이다. 나는 아직 인권운동가 배은심 어머니의 명복을 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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