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나 참사로 죽어도 좋은 목숨은 없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20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 일정이 시작되었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대전환의 시기’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기후위기에 따른 에너지 전환,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산업과 노동의 급격한 전환 등으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환경으로 급격하게 옮겨 가고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치러지는 대선치고는 대전환을 위한 의제들이 공약으로 충실하게 나오지 않고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위에 든 대전환의 과제들은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부터 내려온 잘못된 시스템이나 관행과 단절하는 전환도 필요한 때이다. 마침 지난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재난으로, 산재로 인한 죽음을 당연한 죽음이 아니게 하자는 의지가 담긴 법이다. 이 법률의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기업 활동하기가 두렵다면서 대형 로펌들과 함께 법망을 피하기 위한 대책 강구에 나섰다. 그런 중에서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공사장 붕괴 참사 실종자 수색 작업은 계속되었고, 다른 재난과 산재로 사람들이 죽어갔다.

대선에서 ‘차별과 불평등 없는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만들자는 공약을 대선 후보들이 내기를 원한 재난·산재 참사 피해자 단체와 안전 분야 시민단체들은 2월9일 서울시의회 앞마당에서 ‘대선 후보, 생명안전 약속식’을 마련했다. 이 약속식의 1부는 대구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이었다. 희생자들의 작은 얼굴 사진을 넣은 현수막을 앞에 두고 초라한 헌화대가 만들어졌다. 2부는 피해자들이 생명안전 관련 10대 우선 과제들을 전달하고, 후보들의 발언을 들은 다음 서명판에 서명하는 순서로 진행됐다.

‘생명안전 약속식’에 윤과 안은 불참

이 약속식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생명·안전지킴이, 생명·안전파수꾼 정부”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시는 이익 때문에, 돈 때문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삶이 희생되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1990년 이후) 32년이 흘렀는데 해마다 2000명이 죽는 이 침묵의 참사는 어제도, 오늘도 진행 중”이라며 “원칙이 반칙을 이기고, 진실이 거짓을 이기고, 생명이 이윤을 앞서는 나라! 만들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두 후보 외에 기본소득당, 진보당, 사회주의 진영의 후보가 참석해서 약속식을 진행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약속식에 앞서 1월25일에는 같은 단체들의 공동주최로 대선캠프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 생명안전시민넷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훈 작가는 재난 참사가 “고질적인, 풍토병으로 토착화”된 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죽고 또 죽는 이 죽음의 하부구조 위에 이윤을 건설하는 관행을 ‘기업의 자유’ 혹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질타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은 ‘20대 대선, 시민사회 생명안전 (우선) 10대 과제’를 선정해 대선 후보들과 캠프에 전달했다. 차별과 불평등 없는 생명과 안전대책 수립, 생명안전 일자리 창출과 위험의 외주화 금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및 피해자 권리 보장, 노동자·시민의 알권리와 참여권, 작업중지권 보장 등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들을 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이런 요구들을 반영해 남은 선거 기간에 생명안전 분야 의제를 대선 공약으로 발표할 수는 없을까?

일터에서 일어나는 산업재해를 감시하는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올 1월에도 산업현장에서 67명이 사망했다. 건물 등이 무너져 죽고(13명),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죽고(11명), 기계에 끼여서 죽고(10명), 그 외 화재 폭발, 깔림 등으로 죽어갔다. 노동건강연대는 1월 한 달간의 이 상황에 대해 “기업들 떨고 있다? 1월에도 67명이 죽었습니다”라고 기술했다.

‘안전한 나라’의 공약을 보고 싶다

오는 18일에는 대구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이 대구에서 열린다. 참사 유족들의 노력으로 지하철의 좌석이 불연소 소재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대구에는 대구지하철 참사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추모탑, 추모공원 하나 없다. 대선 후보들이 이 추모식에 참석해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할 수는 없을까? 오늘도 소중한 누군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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