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급진적인 정치가 필요하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마을에서 스피커로 방송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일 오전 우리 마을 ○○○ 어머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은 어디고, 발인은 언제며, 상주는 누구, 누굽니다. 함께 애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알지 못하는 분이지만, 그 순간은 잠시 손을 모으게 되었다. 할머니는 행복한 분인지도 모른다. 애도의 의례가 남아있는 곳에서 돌아가셨으니. 장례의식은 당신의 삶과 죽음이 공동체 안에서 기억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의 힘은 남은 이들에게 더 큰 결속감과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이런 부고는 거의 사라졌고, 내가 본 것도 어쩌면 농촌공동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게 될 마지막 장면일지도 모른다.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채효정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장

그다음 날 신문에서 홀로 죽는 청년들에 대한 기사를 봤다. 코로나19 이후 ‘청년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창 관계를 확장하고 자원과 경력을 쌓아가야 할 시기에 사회 진입이 봉쇄되면서 동시에 관계 형성이 차단되는 것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의존할 가족이 없거나 다른 사회적 자본이 부족한 청년일수록 장기 고립 상황은 더 위험하다. 아동, 노인, 장애인 등 행정의 관리 시스템에 들어있는 이들과 달리 ‘그냥 청년’은 독립적인 성인 주체로 규정되어 죽음 이후에도 발견될 때까지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고 한다. 홀로 태어나는 사람 없듯이 홀로 죽을 수도 없는 것인데, 고독사와 무연고사는 공동체의 와해와 체제의 붕괴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다음 날에는 멕시코의 국경도시 티후아나에서 300구의 시신을 녹이고 체포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 그는 그것이 “자기의 일이자 평범한 직업”이었다고 표현한다. 끔찍한 살인마 이야기 같지만 진짜 살인마는 따로 있다. 범죄산업이 유일한 경제활동을 생산하는 곳에선 범죄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가 가난한 사람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다. 전통적인 공동체적 상호부조도, 국가적 복지체제도 와해된 곳에서 마피아 조직이 공공복지와 사회안전망을 제공한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고어 자본주의>라는 이 책의 저자는 티후아나가 전 세계와 연결된 도시이며 후기 자본주의의 ‘글로컬(glocal)’한 구조적 현실이라고 말한다. 산에 용해되는 시신과 과로와 산재에 날마다 용해되는 몸들이 무엇이 다른가. 주당 600달러의 보수를 받고 고용된 ‘처리 담당자’가 화학적 용해로 ‘죽음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면 선진 국가에선 법률가, 지식인, 전문가들이 거대 기업에 고용되어 범죄와 살인을 합법적으로 은폐한다. 그게 그들의 일이고 직업이다. 범죄로 벌어들인 돈은 금융시장에서 합법적으로 세탁되고 투자로 몸집을 불린다. 범죄자금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영역은 부동산, 여가, 오락, 서비스 산업이다.

그다음 날에는 진보정당 대선 후보 단일화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렇게 엉망인 대선은 없다는 분노와 탄식이 가득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대안정치 세력에 대한 갈망이 높지만 진보정치는 좀처럼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 같지만 위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어진다. 티후아나는 돈만 되면 무슨 일도 가리지 않는 자본의 힘이 어떤 규제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금권과두지배가 극단화된 곳이다. 청년들은 이 범죄적 세계의 일원이 되어야만 인정과 연대, 관계와 소통, 직업과 배경을 비로소 얻을 수 있다. 그런 세계에서 범죄로 밥벌이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목구멍의 명령’에 굴복할 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죽는다. 존엄을 지키려는 마지막 수단으로. 우리는 그런 사회로 가지 않으려고 정치를 한다.

20세기에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을 통해 만들어낸 진보의 영역들은, 분명 그런 자본주의의 폭력을 막는 제동력의 역할을 했다. ‘세계화’와 ‘금융화’라고 부르는 금융마피아의 세계적 지배는 민주주의라는 제동장치를 파괴함으로써만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우리가 ‘진보’라고 불렀던 것에는 분명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지만 자본과 국가의 폭력에 의해 와해되고 파기되어선 안 될 것이다. 티후아나는 자본의 야수성과 사회의 폭력성 간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간절히 다른 정치를 갈망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보여준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국가에서, ‘곁에 아무도 없는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집단에 낚아 채이고 서로를 잡아먹으라는 시장의 명령에 포획당하고 있을 때, 진보정치는 어디에 있어야 할까. 타협주의적 진보운동과 진보정치를 넘어 더 급진적인 사회운동과 좌파정치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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