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호크’가 대선 후보라니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이다.’ 전쟁의 본질을 이만큼 잘 대변하는 말도 없으리라. 프로이센 육군 건설의 공로자이자 군사평론가인 클라우제비츠가 주장한 건데, ‘전쟁이란 내 의지를 강요하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행위’라는 말도 했다. 이에 영국 군사학자 리델 하트는 “1·2차 세계대전을 유발한 폭력만능주의 전략사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봉수 MBC저널리즘스쿨 책임교수

이봉수 MBC저널리즘스쿨 책임교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핵미사일 발사 조짐이 보일 때 3축 체제의 가장 앞에 있는 킬체인, 즉 선제타격밖에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보수 대통령들의 전쟁 회피 노력조차 부정하는 역사의 퇴행일 뿐 아니라 사실에도 맞지 않는다. 1972년 박정희의 7·4남북공동성명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통일 3대 원칙, 1991년 노태우의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 화해·불가침·교류협력을 선언했다. 김영삼은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고 말했고, 1994년 클린턴이 북한 핵시설을 폭격하려 하자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이번 선제타격론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 대선 후보한테서 나왔다는 점에서 섬뜩한 상황이다. 미국이 선제타격을 추진하더라도 한국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는데 이제 그마저 사라질 위험에 처한 것이다. 사실 한국의 대통령은 선제타격의 권한조차 없다. 윤석열 후보가 선제타격론을 주장하려면 전시작전권부터 가져와야 하지만 권한 회수에는 반대해왔다. 앞뒤가 모순되는 말들을 마구 하는 걸 보면 그에게 선제타격론은 ‘정치의 연속’인 듯하다.

선제타격은 북은 물론 남도 초토화

‘안보 포퓰리즘’은 보수 언론에 의해 수구 정치인들에게 각인되고 증폭된다. 중앙일보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국민이 3일만 참으면 전쟁에 이길 수 있다’는 칼럼을 실었고, 조선일보는 2018년 ‘90년대 북핵 개발 초기에 미국이 폭격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우리 국민이 결기 있게 나섰다면 전쟁 없이 북핵 문제는 끝날 수 있었다’는 칼럼을 내보냈다.

선제타격으로 북한 핵을 일거에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예상되는 결과는 북한만이 아닌 한반도의 초토화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클린턴 정부의 시뮬레이션 결과 전면전이 벌어지면 한·미 연합군이 이긴다. 그러나 1주일 안에 남·북·미 군인만 100만이 전사하고, 1주일을 넘어서면 남한 민간인 사상자가 500만이나 발생할 것으로 전망됐다. 남북한 군비증강이 훨씬 더 진전된 상황에서 핵보유국에 선제공격을 가하는 인류 최초 모험국과 최대 재앙국이 되겠다는 건가?

2017년 항공우주력 학술대회에서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한국군 3축 체계는 명확한 기술적 한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한 이동식 발사대에서 핵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킬체인 방어망의 임무수행 성공률은 0.12~2.64%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핵미사일과 재래식 탄두를 섞어 쏘면 식별할 수도 없다.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도 한국이 미국과 함께 중국 견제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맥락에서 폄훼 발언을 한 것이지만, ‘한국의 전략타격 능력은 많이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지형은 이라크처럼 모든 것이 노출되는 사막이 아니라 미국이 패전한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를 닮았다. 강대국도 전쟁을 일으키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 치킨호크(chicken-hawk)란 말이 있다. 주전론자이면서도 군복무를 회피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병역을 기피하면 주요 공직에 나서지 못하던 미국에서도 군면제를 받은 조지 W 부시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됐는데 볼턴과 함께 대표적인 치킨호크들이다. 전쟁은 군면제자들이 결정하고 피는 징집자들이 흘렸다.

군면제 윤석열의 섬뜩한 선거이슈

베트남전과 걸프전에 참전했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이라크전에 반대했다.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같잖은 사유’로 군복무를 하지 않은 윤석열 후보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선거 이슈로 만들어버렸다.

‘잘못 통치된 국가를 위한 만능약은 통화팽창과 전쟁이다. 두 가지 모두 일시적 번영을 가져오기도 하고 영원한 파멸을 가져오기도 한다. 두 가지는 정치적·경제적 기회주의자들의 피신처다.’ 헤밍웨이의 말인데 그의 통찰이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헌법은 66조 ③항에서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한반도에서 평화보다 큰 실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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