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에 필요한 건 눈치가 아닌 결단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우리 모두 5G(5세대 이동통신)에 속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3개 이통사는 2019년 5G 상용화 당시 ‘LTE(4G)보다 20배 빠르다’고 했다. 2GB 용량의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하는 데 4G에서 16초가 걸렸다면 5G에서는 0.8초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이론’에서만 가능한 속도였다. 그나마 5G가 잘 터진다는 서울에서 지금 2GB를 다운받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 안팎이다. 전송속도가 4G보다 빨라지긴 했어도 20배가 아니라 5배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

안호기 논설위원

안호기 논설위원

지난해 이통 3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10년 만에 4조원을 넘어섰다. 전년에 비해 18%가량 늘었다. 상대적으로 고가인 5G 요금제 효과가 컸다. 상용화 4년차인 5G 가입자는 2091만5176명으로 전체의 28.7%에 이른다. 이통사들은 여전히 과장 광고로 5G 가입자를 늘려 이익을 불려나가면서 품질 개선은 뒷전이다. 2030년쯤 등장한다는 6G는 전송속도가 5G보다 50배 빨라진다고 한다. 또 속아야 하나.

5G 주파수 추가 할당 경매를 놓고 이통사 간 진흙탕 싸움이 한창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초 3.4~3.42㎓ 대역의 20㎒ 폭 주파수 추가 할당 경매를 2월 중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LG유플러스가 지난해 7월 과기정통부에 추가 할당을 요청하면서 절차가 시작됐다. 과기정통부는 주파수 간섭 문제가 해결됐고, 이통사 이해관계와 관련 산업 영향, 소비자 편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주파수를 추가 할당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SK텔레콤과 KT 등 경쟁사들은 LG유플러스에 대한 특혜라며 반발한다. 업계 1위 SK텔레콤은 굳이 경매를 하겠다면, 3.7㎓ 초과 대역의 40㎒(20㎒×2개) 폭 주파수도 추가 경매에 내놓으라고 요청하고 있다.

LG유플러스가 보유한 5G 주파수 폭은 80㎒이고, SK텔레콤과 KT는 100㎒씩을 갖고 있다. LG유플러스로서는 다른 통신사는 10차로인데 자기만 8차로에 그치는 셈이다. LG유플러스는 인접한 구간의 주파수를 추가로 받으면 5G 속도와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반면 SK텔레콤과 KT는 자신들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과 동떨어져 현재 기술로는 사용하기 불가능한 주파수를 경매에 부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맞선다.

소비자 입장에서만 득실을 따져보자. LG유플러스 주장대로라면 20㎒ 폭 주파수를 추가해 5G 품질이 개선된다고 한다. 거꾸로 얘기하면 지금까지 LG유플러스 5G 가입자는 같은 요금을 내고도 다른 통신사에 비해 낮은 서비스를 받아온 셈이다. 그나마 앞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전체적인 소비자 후생이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3개 회사가 과점하고 있는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전체 규모는 큰 변화가 없다. 한 이통사 가입자가 늘면 다른 이통사는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과 비슷하다. 4G는 감소하고 5G는 늘어나는 추세다. 5G 가입자를 더 많이 확보할수록 점유율이 높아지고 이익도 늘어난다. 5G 가입자는 SK텔레콤 987만여명, KT 637만여명, LG유플러스 461만여명 순이다. ‘이대로’를 원하는 1·2위로서는 3위가 치고 올라오는 게 불편할 수밖에 없다. 3위가 주파수 대역을 추가해 서비스를 개선하겠다고 하니 1·2위는 가입자를 빼앗길 수 있다며 우려하는 것이다.

경매에 반대하는 이통사의 한 관계자는 ‘국내 산업 보호론’을 들기도 한다. 그는 “5G 품질은 주파수에만 달린 게 아니다. 기지국·단말기·운용기술 등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LG유플러스는 다른 두 회사에는 없는 중국산 화웨이를 기지국 장비로 사용한다. 주파수 대역 추가에 따라 화웨이가 국산 장비를 더 많이 대체한다면 국내 산업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LG유플러스 관계자는 “기지국 장비는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삼성, 노키아, 에릭슨을 쓰는데 우리는 화웨이를 하나 더 쓸 뿐이다. 3분의 1이 안 되는 화웨이 비중이 주파수 확대로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주파수 추가 할당이 표류하자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17일 이통 3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열기로 했다. 간담회가 업계 의견을 듣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일부 우려대로 주파수 경매가 대선 이후로 미뤄진다면 실제 경매는 올해 안에 진행되지 못할 우려가 크다. 4년째 5G에 속고 있는 2000만명 가입자를 위해서라도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시장경제에서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해 소비자 후생을 극대화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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