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기증관’ ‘간송 컬렉션’, 바른길 가고 있나

도재기 논설위원

‘이건희 컬렉션’과 ‘간송 컬렉션’은 국내 최고 수준의 개인 미술소장품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국보 100점 프로젝트’ 등으로 부친의 ‘호암(이병철) 컬렉션’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 관장의 현대미술 관심까지 더해져 선사시대부터 국내외 현대미술까지 망라된다. 그 가치는 지난해 일부 기증한 2만3000여점이 잘 보여준다. 그동안 삼성미술관 리움을 통한 보존과 전시·연구로 미술계 안팎의 주목을 받아왔다.

도재기 논설위원

도재기 논설위원

‘간송 컬렉션’은 간송 전형필이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될 위기의 문화재를 모은 것이다. 1938년 첫 사립미술관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세워 컬렉션을 보존했다. 수집 일화들도 유명하다. 1971년부터 간송미술관 봄·가을 정기전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2013년 후손들이 간송미술문화재단을 세워 부정기적 대외 전시를 하면서 그 전시는 사라졌다. 다소 불편했지만 역사와 전통의 숨결이 묻어 있는 간송미술관 전시, 도록 ‘간송문화’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미술품 수집은 재력보다 미술을 향한 관심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 도움도 받지만 컬렉터들 저마다의 내공도 녹록지 않다. 재력가가 모두 컬렉터이지 않은 이유다. 해방 이전, 이후를 대표하는 두 컬렉션은 역사와 문화에 자부심을 갖게 했다.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풍성하게 하는 공적 역할도 했다.

그런데 두 컬렉션의 가는 길이 혼란스럽다. 이건희 컬렉션은 역사에 길이 남을 기증으로 각광받을 만하다. 국립중앙박물관(국박)·국립현대미술관(국현)·지역 공립미술관 소장품의 양적·질적 수준을 끌어올렸다. 특히 한국 문화예술을 대표·상징하지만 열악한 소장품 구입 예산에 허덕이던 국박·국현에 호박을 넝쿨째 안겼다. 기증은 역설적으로 정부의 부실한 문화정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이기도 했다.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은 뜻하지 않게 정부의 가칭 ‘이건희 기증관(미술관)’ 건립 논란 속에 놓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증관을 2027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애써 수집한 소장품을 보다 많은 사람을 위해 공적자산화한 기증은 극진히 예우하고, 그 뜻을 기리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국박·국현에 정성을 다하는 기증실 마련이 아니라 새 기증관을 세워야 하는지는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기증관의 정체성도, 지속 가능성 등도 살펴야 한다. 수천억원의 건립 예산, 향후 해마다 수백억원의 운영비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기증품의 기초 조사와 학술적 평가, 운영 비전·개관 효과 등의 분석도 없이 건립을 발표했다. 미술관 특성상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는 근본조차 외면한 전근대적 행정이다. 미술계 전문가, 시민단체들이 “공청회 한 번 없는 밀실·졸속 행정”이라 비판하는 이유다.

문체부는 건립 근거로 국민 문화향유 기회 확대를 말한다. 하지만 기증관보다 훨씬 더 적은 예산으로 국박·국현을 부흥시킨다면 그 효과가 배가되지 않을까. 국박·국현이란 이름에 걸맞은 길이기도 하다. 기증의 가치 확산도 주장하는데, 기증관이 아니라 법·제도 보완과 기존 기증실의 개선, 기증자 예우 향상을 통한 기증문화 활성화가 근본 대책이다. 문화강국 이미지 브랜드 구축, 관광산업 활성화도 국박·국현을 외면하고 개인 컬렉션에 기대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리움의 분관’이 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는 기증관의 건립 논란은 컬렉션 기증의 효과를 훼손시키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이 정부로 인해 빛바랜다면 간송 컬렉션은 후손들로 흔들린다. 간송 손자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에 이른 간송 컬렉션은 지난해 보물 2점, 지난달에는 국보 2점이 경매에 나와 충격을 줬다. 곶감 꼬치에서 곶감 빼 먹는 모양새다. 재정난을 이유로 들지만 정부·지자체의 지원, 상속세 면제 등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갖가지 뒷말과 함께 후손의 관리 능력을 문제 삼는 걱정도 나온다. 후손들이 관행을 벗어난 거래로 소장품의 공공성보다 판매 수익만 챙긴다는 지적을 자초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간송의 숭고한 정신까지 덩달아 흐려진다. 그럼에도 소장품들이 우리 역사·문화를 대변하는 찬란한 유산임에는 변함이 없다.

미술계·문화재 원로들은 너나없이 이건희 기증관, 간송 컬렉션이 가야 할 길을 놓고 부심하고 있다. 문체부와 국박·국현의 당국자들은 어떤 고민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문화강국’을 외치는 대선 후보들은 눈길 한 번이라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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