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스탠더드’의 위험성만 보여준 올림픽

박영환 국제부장

중국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디지털 위안화를 선보였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CBDC)다. 여기에는 단순히 디지털 기술 역량을 자랑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가 담겨 있다. 국제결제에서 기축통화인 달러화 의존을 줄이고 위안화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박영환 국제부장

박영환 국제부장

중국의 올림픽 개최는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에 이어 14년 만이다. 디지털 위안화 구상이 보여주듯이 그사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기술, 산업, 무역은 물론 군사, 안보, 외교 등 전방위에서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일 정도다. 중국은 이미 현 국제정세를 ‘백년에 없는 대변동’ 국면으로 정의한 상태다. 서세동점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중국식 세계질서를 만들어 나갈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중화질서 구축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표준화 노력이다. 중국은 통신, 의약, 인공지능, 클라우드 등 미래 첨단 분야의 규칙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중국표준 2035’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주도하는 기술표준에서 벗어나 ‘차이나 스탠더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e커머스, 모바일 결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에서 중국 주도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심지어 공산당 일당 체제인 중국식 민주주의를 서구 민주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이라고 주장한다.

중국 입장에서 이번 올림픽은 중국표준을 세계에 선보일 좋은 기회다. 세계를 상대로 중국의 매력을 뽐내고 리더로서 역량을 증명할 무대가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 독재정권 연장을 위한 애국주의 고양에 치중하고 있는 올림픽 풍경은 중국의 대외정책에 호재보다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날로 나빠지고 있는 중국의 글로벌 이미지를 개선하기는커녕 중국식 표준에 기반한 중화질서의 위험성만 보여주고 있다.

시작부터 어색했다. 개회식에서 시진핑 주석이 일어서자 식전 공연을 하던 댄서들이 두 팔을 벌려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는 약 1분간 계속됐다. 흥겨운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어색한 1분이었다. 지난 1월25일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선수단 출정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선수단은 “영수(시진핑)에게 보답하기 위해 목숨을 걸자. 일등을 다투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외쳤다. 서방 언론은 문화대혁명 당시 광장에 모여 마오쩌둥을 외치던 광기를 떠올렸다. 끝없는 판정 논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가 중국 선수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멀쩡하던 심판이 중국에서만 이상한 판정을 잇따라 한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국은 앞선 방역정책을 과시하기 위해 ‘제로(0) 코로나’를 내세웠다. 올림픽을 앞두고 인구 1300만명의 산시성 시안시를 전면 봉쇄할 정도로 무자비한 정책이다. 효율성은 뛰어나지만 유연성이 떨어지고 인권과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말을 할 때는 어디에서 말할지 조심해야 한다”며 귀국 후 안전한 곳에서 할 말을 하겠다는 독일 메달리스트의 발언은 ‘감옥 같은 베이징’의 현실을 보여준다. 2008년 올림픽 때는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넘쳐났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단속과 폐쇄의 주문만 들려온다.

올림픽이 민족주의 고양에 활용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 대표로 피겨스케이팅에 출전한 주이(朱易) 선수가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를 하자 수억명의 중국 누리꾼들이 ‘나라 망신’이라며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모습에서는 섬뜩함이 느껴진다. 여기에 ‘김치공정’에 이어 한복도 중국 ‘한푸’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모습까지 더하면 배타적 중국 민족주의에 기반한 중화질서에서 소국들이 어떤 꼴을 당할지 익히 예상할 수 있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20년 10월 미국, 한국, 독일 등 14개 주요 국가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73%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지도자를 위해 목숨 걸고 스포츠 경기를 하는 나라, 목표를 위해서는 상식이 무시되는 나라, 효율성을 위해서는 자유를 희생하는 나라,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힘으로 약자를 찍어 누르는 나라. 그런 나라가 주도하는 중화질서에 편입되고 싶은 세계 시민들이 얼마나 될까. 글로벌 리더는 하드파워에 걸맞은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한다. 현재 중국은 절대 그런 나라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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