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한 달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올 들어 가장 큰 참사는 지난 1월11일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신축공사 현장 붕괴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매몰돼 숨진 사고다. 필자는 광주에서 현장을 목격한 순간 말문이 막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한대광 전국사회부장

상식 밖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지만,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은 사업주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아니다. 이 법은 같은 달 27일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대형 참사를 겪어서인지 새로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다. 첫 번째 사건은 법 시행 이틀 후인 29일 경기 양주시 삼표산업에서 발생했다. 설연휴가 시작된 첫날이다. 이 회사의 석산 채석장에서 석재 발파를 위해 돌에 구멍을 뚫던 중 토사가 무너져 내려 노동자 3명이 매몰돼 숨진 것이다. 두 번째 사고는 지난 8일 경기 성남시의 한 신축건물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승강기 설치 작업을 하던 노동자 2명이 추락해 숨졌다. 산재 사망사고 비중이 가장 큰 건설업계에서 발생한 첫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대상이다.

11일에는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여천NCC에서 열교환기 교체 후 테스트 과정에서 4명이 목숨을 잃고 4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일대는 화학물질 취급 업체가 밀집해 평소에도 사고 위험이 커 ‘화약고’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곳’이라는 오명을 갖고 있던 곳이다. 근본적 해결책을 미루다 결국 3번째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업체가 등장한 셈이다.

이후에도 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경남 창원시 두성산업에서는 16명이 급성 중독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처음으로 직업성 질병에 의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례가 발생했다. 국소배기장치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데다 작업자들에게 방독마스크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소기업이 밀집한 인천에서는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20대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사고가 지역 내 첫 번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례가 됐다. 전 업종·지역별로 첫 번째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우리 사회는 과연 안전을 우선시하고 인명을 중시하는 풍토로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일단 언론의 보도 태도는 바뀌고 있다. 언론은 유례없을 정도로 산업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 경위는 물론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지까지를 취재·보도하고 있다. 필자가 소속된 경향신문 전국사회부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요약한 자료부터 관련법, 시행령을 회람했다. 국민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행정기관들도 일부 변화에 대응하려는 모습이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25개 구청장, 투자출연기관장 등은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지난 24~25일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법정의무교육을 받았다. 서울시는 안전이 먼저라며 광화문광장 준공 시기까지 늦췄다. 서울시설공단은 노사가 전국 최초로 위험작업 거부권을 신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업들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 산업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일부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상당수 기업은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와 함께하려는 경영보다는 이윤 추구 가치가 여전히 우선이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사고 직후 대형로펌을 선임하며 법적 대응에 골몰하고 있다. 심지어 공동 대표이사 체제로 바꾸거나 아예 창업주나 최대 주주는 대표이사 직함에서 물러나는 경우까지 있다. 사업주까지 처벌할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법망을 일단 피하고 보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용균씨가 작업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큰 계기가 됐다. 김용균씨의 죽음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경향신문도 2019년 11월21일 1면에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1200명의 명단을 게재하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자고 외쳤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람을 살리자는 법이다. ‘이리저리 빠져나갈 생각만 하지 말고 근본적으로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투자부터 하라’는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비명횡사한 노동자들은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떠올렸을까. ‘가족’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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