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을 걷어라, 행복의 나라로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유엔 소속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지난 18일 공개한 한국의 행복 순위는 전 세계 146개국 중 59위다. 행복 지수는 나라별 1000여명 시민의 갤럽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건강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삶의 선택 자유, 관용,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 등의 항목에 대한 응답 3년 치 자료를 분석해 산출한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경제 대국 10위권이라는 대한민국의 행복 지수가 이처럼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1위 핀란드를 선두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 모두가 상위 10위에 올라서 있다. 구매력 기준 소득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핀란드와 큰 차이가 없다. 기대수명은 오히려 핀란드보다 높다. 비슷하게 벌고, 오래 사는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

사회적 지원에 관한 질문은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기댈 친구나 친척이 있습니까?’이다. 이 항목 응답은 1~80위까지의 국가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2019년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28.6명의 자살률을 기록해 세계 183개국 중 4위를 기록했다. 생명존중시민회의가 1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자살이 10~30대 사망원인 중 1위였다. 전체 자살 원인의 25%는 경제적 빈곤 때문이었다. 자신의 어려움을 터놓을 사람이 없어 젊은 꽃이 스스로 꽃대를 꺾고, 높은 국민소득에 그늘진 이들이 경제적 고통으로 사회와 단절한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1년 3분기 주민등록 기준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40%를 넘어섰다. 혼자 먹는 밥과 술(혼밥과 혼술)은 고독의 깊이를 더할 것이다.

다음은 ‘인생에서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에 불만이 있는지’를 물었고, 이에 대한 응답 점수는 현저히 낮았다. 초등부터 대학까지 철저히 경쟁과 순위로 점철된 교육, 승자만 살아남는 사회, 패자에 대한 배려가 줄어든 사회, 쉼을 용인하지 않는 경단녀란 낙인이 찍히는 사회에서 이 낮은 점수는 욕망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나타낸다. 선택을 강요받은 사회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부정부패에 관한 설문은 정부와 기업 내에 부패가 만연해 있는지를 묻는 것으로 핀란드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부패가 높다고 응답했다.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의 부패지수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부패 엄단을 외치는 윤석열 당선인이 권력남용과 뇌물수수라는 부정부패의 원조 격인 이명박의 사면을 요구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정경유착의 자물쇠는 역대 정권에서 늘 채워졌고, 특별사면이라는 정치적 열쇠가 국민통합 내지는 경제살리기 명목으로 둔갑해 구속을 풀었다. 삼성, SK, 한화, 한진, 기아, 두산, 쌍용, 대상, 대우, 동국제강 등 모든 대기업이 그랬다.

보고서를 훑고 나면 소득은 삶의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란 결론에 이른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자선활동이 증가했음을 알게 된다. 어려울수록 도움의 손길은 더 이어진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담보로 GDP와 성장률에만 매달려왔다. 북유럽 국가의 행복 지수가 높은 것은 소득 격차가 적고, 고소득자에게 매기는 높은 세율로 소득의 재분배가 이루어져 공평한 보편적 복지를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소득과 자산 불평등이 깊어진 한국 사회에 조세제도의 개혁 없이 행복 지수가 높아질 것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사회적 지원은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다. 재정확충과 제도 개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빌라에 산다고 빌거지, 임대주택(LH)에 산다고 휴거지 또는 엘사라고 부르는 사회, 특수학교와 장애인 복지관을 혐오시설로 간주하는 사회가 어떻게 사회적 핵심 가치를 공유할 수 있단 말인가. 복지국가라는 개념과 철학을 국민적 공감대로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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