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의 ‘일회용 규제’ 망언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며칠 전 나는 일회용 컵만 있는 한 동네 카페에서 할 말을 잊었다. 2018년 우리는 84곳의 프랜차이즈 카페를 돌아다니며 커피를 시켰다. 하루에 카페 4곳을 연달아 가거나 홍대 근처에 치중했다 싶으면 수원에 출몰해 같은 브랜드 카페에서 커피를 또 주문했다. ‘쓰레기덕질’ 회원들이 ‘어쩌면사무소’라는 카페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결과였다. 그 당시에도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은 금지였으나, 실제 카페 내에는 일회용 컵만 즐비했다. 복장이 터진 우리는 발품과 커피값을 팔아가며 ‘컵파라치’가 되었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그 결과 조사한 카페 중 86.7%가 일회용 컵에 음료를 제공했고, 로고나 색을 입혀 재활용이 안 되는 컵도 90.5%나 되었다. 우리는 보도자료를 쓰고 캠페인을 하고 서명운동을 펼쳤다. 한 달 만에 대한민국 카페에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 금지’가 붙었고, 정녕 큰 카페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이 사라졌다. 몇 달 후 우리는 그 매장들을 다시 찾아가 커피를 시키며 ‘잠복’ 조사를 했는데, 100% 매장 손님에게 다회용 컵에 든 음료를 내놨다. 코로나19와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환경부는 위드 코로나를 맞아 4월부터 카페 내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금지하려 했다. 그러나 인수위가 나서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탁상공론이라며 위생과 편의를 위해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결국 환경부는 일회용 컵에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등 사실상 규제 적용을 안 하는 모양새다. 인수위의 안철수 위원장에게 묻는다. 코로나 무서워 다회용 컵도 못 쓰는데 식당에서는 뭘 믿고 식사를 한단 말입니꽈.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서 위원장께 과학에 근거한 설명을 요구드립니다.

미세플라스틱 섭취와 플라스틱 오염이 걱정된다면 이를 줄이는 개인의 실천과 사회적 규제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카페들은 일회용 컵 처리에는 책임을 지지 않았다. 버려진 컵을 거둬 쓰레기로 처리하거나 재활용하는 비용을 내지 않았다. 즉 쓰레기를 무단 투기하면서 돈을 번 셈인데, 네 쓰레기 네가 책임지라는 오염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등산객도 자기 쓰레기는 싸들고 하산한다.

2019년 여름 우리는 매장에 이어 테이크아웃 컵도 막기로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시간에 일회용 컵 1000개를 주워 재활용 업체에 연락했으나 재활용한다는 업체는 한 곳도 없었다. 카페가 자기네 컵을 수거하게 하고 이를 버린 소비자가 비용을 내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마침 독일의 보증금 환불 제도 ‘판트’가 떠올랐다. 우리는 국내판 보증금 환불 제도의 도입을 위해 움직였다. 방탄소년단의 ‘아미’ 못지않게 정성을 들인 ‘쓰레기덕후’의 집단행동이었다.

그 결과 두 번 낙방했던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올 6월부터 프랜차이즈 카페 일회용 컵에 300원의 보증금이 붙는다. 벌써 기업의 반발과 언론의 비판 기사가 나온다. 하와이의 경우 보증금제 시행 1년 만에 해변에 버려지는 페트병이 절반으로 감소했다. 우리는 이제 죽어서 이름이 아니라 미세플라스틱을 남기는 인생을 산다. 당장 플라스틱을 외면하지는 못해도 이를 초치는 인수위와 여론에 반대하는 댓글은 달 수 있다. 인터넷 담벼락에 침이라도 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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