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의식을 지배하는가?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의 에볼루션] 공간은 의식을 지배하는가?

공간과 의식에 관한
당선인의 말 살펴보면
용산 이전의 확신 뒤에는
증거 없고 느낌만 있는 듯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 주는 요인 많지만
타고난 성향이 가장 크고
공간은 파생적 변수일 뿐
따라서 당선인의 주장은
엄밀히 말해 틀린 가설

공간은 의식을 결정 안 해
그것은 지하철 장애인과
약자 혐오 잠재적 장애인
모두에게 포괄적 적용

1941년 5월10일, 런던의 밤은 독일전투기의 무자비한 폭격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 후로 2년 반쯤 지난 1943년 10월28일, 영국 의회는 폐허가 된 하원을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재건축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하원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나섰다. “이제 우리는 재건축을 해야 할 것인지,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연설 문장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우리는 건축물을 짓지만, 그 이후로 그것은 우리를 짓습니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건축계에서 널리 회자되는 이 명언을 남긴 후, 처칠 총리는 재건축의 원칙에 대해 다음의 두 가지를 주문했다(사실, 이 부분이 핵심이다). 그중 하나는, 양당 의원들의 논쟁을 더 치열하게 이끌어낼 수 있는 전통적 형태(긴 의자에서 서로 마주 앉은 직사각형 형태)를 고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많은 국가의 의회 구조가 지금의 우리 국회의사당 내부처럼 반원 형태임을 고려한다면, 전통을 고수하자는 그의 주장은 보수적 결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안보와 민생에 대한 치열한 토론을 위해 직면의 구조를 선택한 그의 충심은 납득이 된다.

그런데 나머지 한 가지 주문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좌석 수를 줄여서 모든 하원들이 자리에 앉을 수 없게 하고, 고정석을 만들지도 말라”는 주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을 이었다.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쉽게 이해된다. 만일 하원의원 공간이 모든 의원을 앉힐 수 있을 만큼 넓다면, 거의 텅 비거나 반쯤 찬 상태에서 활기 없는 논쟁을 벌일 확률이 높다. 우리 의회의 핵심은 치열한 대화와 토론인데 이것은 작은 공간에서 더 잘 진행된다.” 그는 밀집 공간에서 더 치열하게 논의할 수 있고 더 친밀해질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전쟁 중에도 의회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확신했다(이분 혹시 천재 아니셨을까?). 실제로 1950년에 새로 완공된 하원에는 좌석 수가 총 427석밖에 되지 않았고(당시 하원의원 수는 646명), 침이 튈 만한 거리에서 양당 위원들이 치열한 논쟁을 펼치는 광경은 지금도 영국 의회의 브랜드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당선인의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표현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국민 소통’을 위해 청와대를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비록 처칠처럼 세련된 표현을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공간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명제를 던진 것은 사실이다. 공간 전문가들이 정치적 성향과 크게 상관없이 용산 이전 문제에 대해 강력한 반발을 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른다. 전문가들의 대답은 대체로 ‘용산 이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왜 이렇게 서둘러야 하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며 제대로 검토하자.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큰 재앙이 올 수도 있다’ 정도이다.

그렇다면 공간과 의식의 관계는 대체 어떤 것일까? 윤 당선인의 말대로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일단 엄밀함의 측면에서 보면, 그의 “지배한다”는 처칠의 “짓는다(shape)”보다 훨씬 강한 의미로서, 마치 공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의식이 획일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으로 공간 결정론처럼 해석될 수 있다.

과학에 도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사실 공간이 주는 심리와 행동의 변화에 관한 연구는 공간심리학, 또는 신경건축학 같은 이름으로 최근에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예컨대 외관이 튀는 건축물일수록 그 건물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창의성이 더 크다는 연구, 햇볕이 잘 드는 공간일수록 연대감이 상승한다는 연구, 벽지가 빨간색인 방의 아이들이 집중력이 더 높다는 연구, 녹색 계열이 안정감을 주며 뾰족한 모서리보다 둥근 모서리가 더 선호된다는 연구, 심지어 배산임수가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최적의 입지조건이라는 연구(풍수지리에서 회자될 법한)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이것은 모두 ‘과학적 연구’라는 점이다. 즉 이런 모든 연구들은 가설로부터 출발하여 과학적 방법론으로 탐구된다. 가령 심리학자들은 천장 높이가 사람들의 사고의 개방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후, 천장의 높이를 변인으로 놓고 창의성의 크기를 측정했다. 그 결과 높이가 3m 천장인 공간에서 창의성 문제를 푼 아이들이 2.4m 천장 공간에서의 아이들보다 두 배나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런 결과는 우리의 일상 경험과도 일치한다. 탁 트인 공간에 가면 마음이 넓어지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기능적으로 네모반듯하게 지어진 기존 학교 건물들이 문자 그대로 입시 감옥이 되었는지는 검증해봐야 한다. 공장형 건물이 즐비한 벤처타운에서 창의적 비즈니스가 얼마나 탄생하는가에 대해서는 테스트가 필요하다. 직장에서의 높은 파티션이 직원 간 소통을 얼마나 가로막는지는 실험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과학의 세계에서는 뻔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객관적 절차를 통해 함께 확인받기 전까지는 문턱을 넘을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설’의 세계에만 머무를 뿐이다.

과학에 도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자나 예언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아인슈타인이 낸 이론이라 해도, 한갓 대학원생이 그에 반하는 경험적 증거들을 가지고 나오면, 폐기될 수 있는 게 과학이다. 물론 용산 이전이 궁극적으로 좋은 해법일 수 있다. 하지만 기존 청와대 건축과 조형이 왜 제왕적인지, 용산 이전을 위한 공간 설계는 어떻게 국민 소통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면, 그것은 또 다른 독단이 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용산 이전의 확신 뒤에 증거는 없고 느낌만 있는 듯하다.

소통, 공간보다 주변인이 더 큰 영향

공간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두 번째 진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물리적 환경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인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연구는 영향에 관한 탐구이다. 공간이 인지와 행동을 결정하는가에 관한 연구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전자조차도 우리의 몸, 심리, 행동에 영향을 줄 뿐 결정을 하지는 않는다. 헌팅턴병처럼 질병 중 극히 일부의 경우에만 유전자 결정론이 들어맞는다. 환경의 영향은 늘 존재한다. 공간과 의식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공간만이 아니다. 어쩌면 제일 중요한 요인은 타고난 성향이고, 그다음이 양육 및 생활 환경일 터인데, 공간은 그 환경 속에 포함되는 파생 변수일 뿐이다. 따라서 “공간이 의식을 결정한다”는 주장은 엄밀히 말해 틀린 가설이다.

게다가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주는 환경에 물리적 공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탁 트인 소통의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모두 꽉 막힌 사람들이라면 소통적 사고와 행동을 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사실 우리는 주위의 물리적 환경보다 인적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받는 사회적 동물이다. 차기 정권이 소통의 정치를 우선순위에 두었다면, 소통의 공간에 집착하는 것만큼 소통에 진심인 사람들을 주변 가득히 배치해야 할 것이다.

사실 공간이 주는 영향까지를 고려하여 더 창의적이고 소통적인 공간에서 일하겠다는 마음은 진일보한 생각이라 할 만하다. 누구든 그런 멋진 공간에서 유능하게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세련된 욕망을 대통령 집무실 이전 같은 데에만 투사하려 할까?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의 관점에서 한국의 대중교통, 학교, 직장, 거리, 공원의 공간 설계는 여전히 위협적이다. 그들은 오늘도 지하철을 타보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지만, 또 한번 우리 사회가 자신들을 얼마나 배제하고 있는지를 느끼며 좌절한다. 반면 비장애인에게는 이 나쁜 설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심리와 행동에 큰 불편함을 주게끔 설계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간이 의식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의식에 영향을 주는 하나의 요인이지만 때로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이 진실은 추락 사고를 걱정하며 지하철 타기를 감행하는 장애인들, 그리고 공간 속의 차별을 읽어내지 못하는 잠재적 장애인들 모두에게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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