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장대익 진화학자·과학철학자
[장대익의 에볼루션] 인간은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동영상이 돌아가자 학회장이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작은 체구의 침팬지 한 마리가 덩치 큰 수컷 침팬지 두 마리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고 있었다. 패대기를 치고 쭈그린 몸을 발로 차고 손을 꺾고 펄쩍 뛰어 양 발과 손으로 내리친다. 살점이 찢겨 나가고 피가 사방에 튀고 더 이상 비명도 들리지 않자 그 킬러들은 희생자를 몇 미터 질질 끌고 다니다가 그냥 버리고 간다. 만일 그들이 인간이었다면 담배 한 모금을 빨고 유유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피가 튀는 19금 영화보다도 더 잔인하고 끔찍한 영상이었다.

장대익 진화학자·과학철학자

장대익 진화학자·과학철학자

20년 전쯤 세계영장류학회에서의 그 충격과 공포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자료 화면이 다 끝나자 100여명의 영장류학자들이 모인 학회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발표자는 우간다의 키발레 지역과 탄자니아의 곰비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단 간 폭력 연구를 수행하던 중 목숨을 걸고 이 광경을 촬영했다고 말했다. 그때 이후로 이 끔찍한 영상은 전쟁 발발의 비보가 들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며칠 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뿌리는 지독히 깊다.

전쟁, 즉 집단 간 공격행동은 포유류 중에서도 늑대나 돌고래처럼 고도의 지능을 가진 사회적 동물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은 어떤가? 인류는 탄생 이후로 집단 간 분쟁을 쉰 적이 거의 없다. 초창기에는 인구 밀도가 지극히 낮았기 때문에 집단 간 충돌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4만7000~1만2000년 전에는 전쟁에 참여한 10~25%의 남성이 죽어 나갔을 정도로 집단 간 충돌이 빈번했다고 한다. 창 자국이 남아있는 남성 두개골의 무더기 발견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다. 평화는 대개 그 수많은 전쟁의 막간이었을 뿐이다.

대체 우리는 왜 전쟁을 하는가? 홉스는 인간의 자연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전쟁으로 보았고, 그래서 국가와 같은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고 논증했다. 반면 루소는 평등한 인간 사회에 사유재산제도가 들어오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칸트는 평화로운 문명 세계를 위한 실천적 구상에 천착하여 “인간의 이성은 전쟁을 절대적으로 금지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철학적인 사유를 했을 뿐 경험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전쟁을 일으키는 심리에 대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1932년 10월30일, 아인슈타인이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국제연맹의 의뢰로 제가 원하는 대로 수신자를 선택해 자유롭게 질문을 던지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인간은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전쟁은 이 시대에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지만 종결은 요원해 보입니다. 저의 지식은 인간의 욕망과 감정의 깊은 영역까지 도달하지 못합니다. 인간 본능에 대해 심오한 지식을 갖고 계신 당신의 답을 듣고 싶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질문과 함께 초국가적 기구인 국제연맹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개진했다.

프로이트, 공격 본능 억제 낙관 못해

프로이트의 답장은 어땠을까? 그는 국제연맹의 명확한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인간 본성의 입장에서 전쟁의 원인과 해소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인간 본능은 보존과 통합을 추구하는 에로스적 본능과 파괴와 공격을 추구하는 공격 본능으로 나뉜다. 그런데 공격 본능은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제거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인가?

프로이트는 이 대목에서 에로스적 본능에 호소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격 충동이 전쟁으로 발산하지 못하도록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는 문화의 발전도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덧붙였지만,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았다.

집단 간 갈등에 관한 진화심리학적 탐구는 전쟁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 통찰을 경험적으로 풍부하게 채워주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내집단(in-group)을 편애하고 외집단을 폄훼하려는 성향, 즉 ‘부족 본능’을 가지고 있다. 소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았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내집단 구성원을 더 챙기는 부족 본능이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었을 것이다. ‘남성 전사(man warrior)’ 가설에 따르면, 이런 부족 본능은 주로 외집단의 위협이 존재할 때 폭발하며 성에 따라서 그 양상도 다르다.

전쟁이야말로 ‘성차가 있는 부족 본능’의 최적의 연료다. 전쟁 시 내집단 남성은 외집단 남성과 싸워야 했고, 내집단 여성은 주로 외집단 남성에 의한 성적 위협에 대처해야 했다. 이때 남녀는 각자가 보호해야 할 대상도 서로 달랐다. 남성은 자신의 자원과 영토를 지키기 위한 심리적 적응으로서 자기 자신과 내집단을 동일시할 필요가 있다. 반면 여성은 내집단과의 동일시는 그다음 문제였고 자기 자신이나 자식을 지키는 일이 최선일 것이다.

실제로 이런 예측은 잘 들어맞았다. 경쟁 집단의 위협에 노출되었을 때 남성은 내집단 구성원과의 강한 협력을 떠올리는 반면, 여성은 우정과 돌봄을 떠올렸다. 그리고 집단 간 경쟁 시 남성은 강한 공격성을 보이고, 여성은 성적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보였다. 또한 집단 간 경쟁 자극에 노출시킨 이후 공공재 게임을 진행했더니 남성은 내집단에 더 많은 분배를 했다. 한편 집단 동일시의 수준에서도 성차가 실제로 존재했다. 가령 외집단이 내집단에 위협을 가할 때 내집단의 남성은 더 높은 집단 충성도를 보였다. 마침 우리 연구실도 난민 문제를 가지고 이 가설을 추가적으로 검증해보았다. 연구 결과 난민 위협을 다룬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국가 동일시를 더 높은 수준으로 했으며, 남성이 더 그러했다. 게다가 난민 위협 시 여성의 경우에는 자기 보호 동기와 친족 돌봄 동기가 더 컸다.

감정조절 통해서 분쟁 축소 시사

이렇게 외집단이 주는 위협은 남성을 ‘전사’로, 여성을 ‘어머니’로 변신시킨다. 이것은 프로이트가 아인슈타인에게 답했던 바, 각각 공격 본능이요 에로스적 본능일 수 있다. 그렇다면 밖으로부터의 위협이 있는 한, 우리는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과연 인류 사회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가?

공감 배양 방법을 연구한 심리학자 핼퍼린은 인지적 재평가를 통한 감정 조절이 외집단에 대한 분노를 줄이고 공감을 키울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여기서 감정 조절이란 우리가 어떤 감정을 언제 가지며 그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표현하는지에 영향을 주는 과정이다. 우리는 상황에 대한 의미 변화를 유발하는 인지적 재평가를 실시함으로써 감정 조절을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부정·긍정 감정의 강도나 지속 시간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실험 참가자들은 이스라엘 국민의 정치 성향 분포가 반영되어 선정된 39명의 유대계 이스라엘 대학생이었다. 실험군에게는 분노 유발 사진들을 보여준 후 마치 과학자인 것처럼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반응하게끔 요청했다. 반면, 대조군에게는 자연스럽게 반응하도록 했다. 모든 참가자가 본 그 자료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한 후 팔레스타인의 보복 행동(로켓 발사, 하마스 지도자 선출, 이스라엘 병사 납치)을 묘사한 사진, 텍스트, 음악으로 구성된 분노 유발 자료들이었다.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느낀 분노와 본인이 느낀 또 다른 감정(공포, 증오)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표시했다. 그 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네 가지 회유 정책(가령 ‘안보 상황과는 관계없이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음식과 의약품을 보내야 한다’)과 세 가지 공격 정책(가령 ‘이스라엘 군대는 테러리스트가 있다면 민간인이 가득 찬 건물이라도 폭격해야 한다’)에 대한 지지 정도를 표시하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인지적 재평가를 실시했던 실험군은 성별, 종교적 신념,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해 분노를 덜 느꼈으며 다른 부정적 감정도 없었다. 또한 실험군은 회유책을 더 많이 지지하고 공격 정책을 덜 지지했다. 이 결과는 인지적 재평가를 통해 분노를 조절함으로써 정치적 갈등을 축소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감정 조절을 통해 뿌리 깊은 분쟁에 대한 정치적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일어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에 대한 실험 참가자의 반응도 결과는 같았다. 더욱이 5개월 후에 다시 측정했을 때에도 그 효과는 지속되었다. 즉 인지적 재평가는 장단기적으로 모두 외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공감의 반경을 점차 넓혀 나간다면, 전쟁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외집단이 주는 위협은 남성을 ‘전사’로 여성을 ‘어머니’로 변신시킨다. 그렇다면 위협이 있는 한 전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인가
공감 배양 방법을 연구한 심리학자 핼퍼린의 실험 결과 인지적 재평가는 외집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누그러뜨렸다
따라서 공감의 반경을 점차 넓혀간다면, 전쟁 등 전 지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않을까

■장대익

진화학자이며 과학철학자.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연결시키는 연구와 개발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오가며 인간, 기술, 사회의 진화를 이야기해왔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국인지과학회 회장을 지냈다. 작년부터 서울대학교 초학제 교육AI연구센터 소장으로 있으며 에듀테크 벤처기업 트랜스버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다윈의 식탁> <다윈의 정원> <울트라 소셜>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종의 기원> <통섭>(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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