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리더십

이융희 문화연구자

코로나19 팬데믹이 서서히 마무리되는 듯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비롯해 각종 제한이 단계별로 풀리고 있으며, 확진자 숫자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물론 이것이 실제 회복인지, 아니면 코로나19 현상이 일상적으로 변해가면서 무덤덤해지는 것인지는 조심스럽게 살펴봐야 하겠지만 향후 1년, 어쩌면 그보다도 좀 더 빠른 시기 안에 우리는 잃어버렸던 일상을 되찾을지 모르겠다.

이융희 문화연구자

이융희 문화연구자

일상을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요 몇 년 간은 ‘팬데믹’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서사 같다. 소설 작법서 중 <소설가를 위한 소설 쓰기>란 책이 있다. 이 책의 1권은 <첫 문장과 첫 문단 쓰기>인데, 소설의 구조를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은 이 일상을 깨뜨릴 만한 강력하고 과잉된 사건을 조우한다. 주인공은 다시금 일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을 저지하려는 무언가와 대립한다. 우리는 이때 주인공을 프로타고니스트라고 이야기하며, 대적자를 안타고니스트라고 부른다. 흔히 배드엔딩에선 주인공이 대적자에게 패배하게 되고, 해피엔딩에선 대적자를 무찌른 주인공이 일상을 되찾게 된다. 이때 일상은 처음 주인공이 살아가던 일상이 아니라 조작된, 변화된 일상이다.

팬데믹의 세계에선 일상을 수호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이 시도되었다. 마스크로 시작해 방역, 백신, 치료제로 이어지는 도구를 둘러싼 치열한 담론이 계속되었고, 정책과 함께 수많은 목소리가 교차했다. 그리고 마침내 일상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전염병에 대한 수많은 노하우를 누적한 채 그다음의 질병이나 재앙을 견뎌낼 준비를 마치리라.

그런데 여기까지 도달했을 때,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존재들이 떠오른다. 바로 수많았던 안타고니스트들이다. 마스크 대란 초기 마스크를 독과점하며 거액의 프리미엄을 붙여 팔았던 사람들부터 불안정한 상황에서 공포를 이용해 주식이나 코인으로 사기를 치고 사라진 경제사범들, 그리고 백신 주사는 음모론에 불과하다고 부르짖은 백신 반대론자들까지. 비정상적인 시대를 이용해 제 몫의 파이만을 부르짖던 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상은 서사 같을지언정 소설만큼 드라마틱하진 않다. 일상이 회복된다고 한들 안타고니스트들이 처벌을 받거나 앞으로 나서서 사과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전염병은 허구에 불과하고 공포감은 만들어진 것이며 백신은 정부와 해외의 음모라고 부르짖던 수많은 사람들은 제 말을 믿는 팬덤을 토대로 새로운 음모론과 혐오에 골몰하고 있다. 많은 잘못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 사회 리더의 조건은 잘못을 지적해도 뻔뻔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뉴스에선 서로의 잘못이 폭로되는데 그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단 뻔뻔하게 부정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뻔뻔함은 그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않으니 고발은 결국 무의미해지고 만다. 결국 시민들이 강력한 힘이나 공권력, 그리고 사이다를 요구하는 것도 이러한 뻔뻔함에 지친 반작용이 아닐까.

한 시대가 저물며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다. 변화하는 시대만큼 뻔뻔함의 리더십이 아닌 사과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시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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