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추국가 실현, 그 빈 공간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의 외교만사] 글로벌 중추국가 실현, 그 빈 공간

윤석열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실현’이라는 외교·안보 정책 비전을 제시하면서 5월10일 출범한다. 그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 시기 외교·안보 정책의 부정에 가깝다. 북한과의 평화와 협력보다는 비핵화와 억제에 더 방점이 가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기존 대북 군사동맹을 넘어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협력해 나가는 포괄적인 전략동맹으로 대폭 강화하려 한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이다. 친중이라 종종 비난받았던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는 달리 중국에 대해 할 말을 하고, 상호 호혜성에 입각해 상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문재인 정부가 공들인 동북아 플러스 책임공동체와 한반도 평화·번영 구상은 사실상 버려졌다. 이는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쏠린 그간의 비판을 생각하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김흥규 아주대 교수·미중정책연구소 소장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출범 전부터 많은 우려를 자아낸다. 윤석열 정부의 핵심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를 담당했던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명박 외교·안보 2.0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를 표방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강력한 압박을 바탕으로 비핵화를 추진했다. 비핵·개방·3000이라는 유연전략도 채택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남북관계는 비핵화를 우선하면서 대립만 크게 강화시켰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표방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오늘날 한·일관계 악화의 빌미를 제공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한·미 동맹 위주 전략은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로 이어졌다.

각자도생 상황서 윤의 정책은 빈약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담당한 이들이 어떠한 역사적 교훈을 배웠고 더욱 성숙해졌는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자성이나 고뇌의 흔적은 아직 찾기 어렵다. 이 시기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역량은 방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화되었다. 미·중 전략경쟁의 시기가 시작되었고, 기존의 자유주의적 미국 패권질서는 회복 불능의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는 기존 국제정치 질서의 묵계들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핵을 가진 강대국이 비핵국가인 약소국을 침공해, 영토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직면한 외교·안보 환경은 극히 비관적이다. 대만과 더불어 한반도가 지정학적 지진대로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는 형성되지 않은 채, 혼돈의 시대에 돌입하고 있다. 근대성, 역사적 진보, 제도, 안보공동체 등에 대한 낙관론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각국은 이제 스스로 자신들의 안보·이익을 지켜야 하는 각자도생의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 대응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내세운 정책은 빈약하고 경직되어 있다. 한·미 동맹에 더욱 귀의하는 전형적인 약소국 편승전략을 대응책으로 들고 나왔다. 한·미 동맹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기세이다. 혼돈 시기 국력의 핵심인 ‘자강’에 대한 고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이미 자유주의의 이상을 포기하고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섰다. 이에 상응해, 한국 신정부에 대한 미국의 기대치와 요구는 대단히 높다. 대북정책의 핵심은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명박 시대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요구한다.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답은 보이지 않는다.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 탓으로 돌리고 반중 정서에 편승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방어 불가능한 북한의 위협에 대한 대응책도 안이하기 짝이 없다. 한국형 아이언돔 배치, 사드 추가 배치, 3축체계의 완성, 선제타격 등의 주장은 현실성도 크게 부족하고, 실제 적절한 대응책도 아니다. 이를 추진한다면 재정 낭비로 국력은 약화되고, 안보적 취약성은 더욱 증대될 것이다. 누군가 윤석열 당선인의 귀를 붙잡고 이러한 정책들이 여과없이 쏟아지게 하고 있다. 그런데 더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주장들을 숙고하고, 제어하고, 관리할 어떠한 내부적인 역량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재인 길 잇되 문제점 개선이 답

윤석열 정부는 외교·안보 영역에서 다음 세 가지의 주요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우선, 남북관계 악화는 자명한 듯하다. 핵을 가진 북한에 대해 선제공격을 언급하고, 군사적으로 도발하는 것은 무모하기조차 하다. 조용히 ‘대항적 공존’ 전략에 바탕을 둔 응징적 보복 억제 전략을 잘 준비해야 한다. 두 번째, 한·미 동맹 강화로 야기될 한·중관계 갈등에 대한 대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미·중관계를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만 해석하는 듯하다. 대중 및 동북아 국제정치를 이데올로기적인 시각에서 해석한다. 북·중·러 동맹을 너무 당연시 여긴다. 이는 현실과 다르다. 이래서는 중국으로부터 야기될 위협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세 번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는 미국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현시점에서 이들의 전략적 사고와 국가 이익은 과거 우리의 인식이나, 기대하는 것과는 차이가 커 보인다. 문재인 정부에서 보여준 ‘한국 외교의 가벼움’은 또 다른 측면에서 윤석열 정부에서도 재현될 개연성이 높다.

내 제안은 차라리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계승하라는 것이다. 대신 문제점들은 개선해 나갈 것이라 선언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외교의 무게감과 정책 공간의 여지를 넓혀준다. ‘자강’에 대한 강조와 고뇌를 더 많이 하면서 동맹과 국제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북한과 평화 공존 원칙을 추구하되, 북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군사적 대응방안을 조용히 준비해야 한다. 중국을 포함한 일본 등 주변국들과 우호와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전갈형’ 유사시 군사대응책과 더불어 국제연대 공간을 넓혀 나가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과도한 자신감이 넘친다. 상당한 비용을 초래할 개연성이 크다. 우리는 강국을 지향하지만 초강국은 아니다. 혼돈과 환난의 시기에 더더욱 중요한 것은 항상 스스로의 부족함을 살피고, 천하의 인재들이 백가쟁명하게 하면서 역량을 결집하는 것이다. 협치와 국민들의 공감대를 확대하는 노력보다 더 강력한 안보 장치는 없다. 자신감 넘치고 자족하는 집단사고는 그간 한국 외교·안보의 생태계를 점점 더 위축시켰다. 이제 족하다. 더 과해지면 국가 존망의 위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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