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라고 다 같은 스카이가 아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미국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은 1975년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의 위대한 점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같은 것을 소비한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콜라를 마시고,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콜라를 마시고, 당신도 콜라를 마신다. 어쨌든 유명한 사람의 말이니 한 수 접고 들어가지만 크게 동의는 안 된다. 최근에 흥미로운 연구가 몇 개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버전으로 바꿔보자. 자식을 상위 1%로 만들고 싶은가? 그러면 대치동 학원 보내는 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소위 말하는 스카이나 아이비를 졸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거다. 명문사립고등학교를 나와야 한다. 또 하나. 포천 상위 100대 기업임원의 10%는 아이비리그 출신이지만 미국 모든 상장기업의 10%는 적어도 1명의 하버드 출신 임원이 있다. 명문사립고등학교와 하버드의 조합이 필요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끼리끼리 동질적인 집단(Peer Group)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거의 인간의 본성인 듯하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이걸 문화자본이라고 정의했다. 문화자본이 포함하는 것은 비슷한 취미생활, 유년 시절, 대학 시절 또는 그 이후의 공통된 경험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초대 내각을 보면 한국 초엘리트의 조건 몇 가지가 나온다. 우선 본인들이 석·박사가 있어야 하고 그것도 미국, 영국 등에서 받으면 좋다. 자녀들은 일단 청소년기에 외국학교·특목고를 보내야 한다. 장관 및 장관 후보자 자녀의 73%가 그곳에 진학했다. 또 해외 유학을 보내야 한다. 성인 자녀의 절반이 넘게 해외 대학으로 진학했다.

이 화려한 스펙은 윤석열 정부의 능력주의를 방어하기에 차고 넘친다. 질문은 이런 문화자본을 공유하는 초엘리트들만 모아놓으면 국가가 잘 굴러갈 것인가이다. 이런 모임에서는 우선 본인들의 예전 유학경험, 해외파견 경험을 얘기할 것이고, 자녀들의 스펙 얘기가 꽃을 피울 것이다. 자기 자식 얘기하기 부끄러워도 뭔가 얘기가 나오면 한마디 보탤 지식과 경험이 있다. 모임에서 겉돌지 않는 것이 문화자본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라가 좌파에 의해 망해간다며 혀를 끌끌 차기 시작한다. 나라를 구할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헤어질 것이다.

과장된 묘사이기는 하지만 최근 연구들은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전 세계적 현상인 정치적 양극화는 여러 정의가 있다. 우선 정치적 성향에 따라 커지는 의견 차이이다.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정권하에서 경제성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하고 민주당 지지자도 반대로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들은 다를까? 아니다. 미국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현재 정권이 다르다고 치자. 그러면 대출 이자율 결정 시 위험 프리미엄을 더 높게 책정한다. 신용평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은 신용등급을 더 자주 강등시킨다. 자신의 정치성향과 정권의 성향이 다르면 비관적인 경제전망을 가지는 것이다. 이들은 확신까지 있어서 더 문제다.

다른 정치적 양극화는 정치적 성향이 동질적인 사람끼리 뭉치는 거다. 끼리끼리 집단화는 댓글을 보면 이해가 쉽다. 지난 대선 때 양대 포털의 정치기사에 반드시 달리는 댓글은 내 주변에 윤석열 또는 이재명을 지지하는 사람을 못 봤다는 거다. 이거 단순히 선동만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정말 그런 사람들은 그런 집단 안에서 산다. 이런 집단 안에서 의견은 더욱 더 양극화된다. 집단동질화의 폐해는 기업 실증연구를 보면 된다. 자기와 성향이 비슷한 사람을 뽑아서 이사회와 임원이 정치적으로 동질화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최고 권력자인 CEO에 대한 견제가 사라진다. 무분별한 투자가 일어난다. 특히 임원들의 정치성향과 현 정권의 성향이 일치하면 경제에 대한 장밋빛 전망하에 과잉투자가 일어난다.

정권이 바뀌었고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청와대와 내각에 들어가는 건 자연스럽다. 결국 정도의 문제가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 얼마 전 삼성, SK, 현대차 등이 GDP의 50%에 달하는 1000조원이 넘는 투자계획을 발표했고, 즉각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것이 정권교체의 효과라고 일갈했다. 연달아 한덕수 총리는 대대적인 규제타파를 외쳤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해외자본의 재벌경영권 침탈을 막아야 한다는 좀비 아이디어를 다시 꺼내 들었다. 여기에 상법, 공정거래법 등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업활력법 상시화까지 국정과제로 등장했다. 규제완화가 경제성장의 마법이라는 신화로 똘똘 뭉친 초엘리트집단과 재벌총수의 환상적인 협조로 이 정부는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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