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효심과 원대한 꿈이 담긴…동양 성곽의 백미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23) 수원 팔달문

1971년, 2021년 수원 팔달문.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71년, 2021년 수원 팔달문.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수원 화성(華城)은 정조의 지극한 효심이 낳은 산물이다. 정조는 양주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좋은 곳으로 옮기려고 터를 물색하였다. 그런데 고르고 또 골라 정한 천하의 명당에는 이미 수원부의 관아가 있었다. 따라서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려면 관아와 그 주변에 살던 백성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고, 이를 위해 착수한 프로젝트가 팔달산 서쪽에 화성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화성은 수도 남쪽의 튼튼한 방어기지 역할을 해야 했으며, 당쟁을 근절하고 강력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는 정조의 원대한 정치적 구상의 중심지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정조는 화성 건설에 심혈을 기울였고, 당대의 각종 지식과 기술을 총동원하였다. 1794년 2월에 착공하여 2년 반 만인 1796년 9월에 완공된 화성은 동양 성곽의 백미로 꼽히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사진은 화성의 사대문 가운데 남문인 팔달문(八達門)의 모습이다. 서울의 남대문과 다른 구조가 눈에 띄는데, 문의 앞쪽을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는 옹성(甕城)이 그것이다. 모양이 마치 항아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옹성은 성문을 공격하거나 부수는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팔달문을 비롯한 화성의 성문에는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벽돌로 쌓은 옹성을 만들었다.

1971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훼손되었던 옹성의 가운데 부분이 복원되었다. 복원된 옹성 정면 중앙의 기와지붕이 달린 문루, 문짝이 달린 문은 화성의 옹성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그리고 문 윗부분에는 그 용도가 궁금한 다섯 개의 구멍이 보인다. 총을 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적을 관측하기 위한 것일까? 그러기에는 구멍이 너무 크다. 오성지(五星池)라 부르는 이 구멍은 적이 성문에 불을 지를 때, 이 구멍으로 물을 쏟아부어 성문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설들은 북문인 장안문(長安門)에서도 볼 수 있다. 팔달문과 장안문은 쌍둥이와 같이 형태가 똑같기 때문이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신문의 사진은 셀수스협동조합 사이트(www.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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