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와 싸우는 게 현재와 싸우는 것

이창민 한양대 교수

얼마 전 미국 유명 경제지에 연방준비제도(연준)와 조 바이든 행정부의 팬데믹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다. 2008년 금융위기의 경험과 그에 맞는 정책(적극적 재정·통화정책)을 성격이 전혀 다른 팬데믹 위기에 적용하다 보니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과연 이런 정부개입 책임론이 맞는 것일까? 이것도 일종의 좀비 아이디어다. 실증 근거는 없는데 계속 살아남아 우리를 괴롭히는 게 좀비 아이디어인데 부자감세가 경제성장의 마법이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2008년 금융위기는 은행발 위기가 총수요의 위축과 대규모 실업을 만들어 낸 것이고, 팬데믹 위기는 공급 충격인데 원자재, 소부장, 운송, 일할 사람 등이 모자랐다. 문제는 현재의 지표들이다. 일단 지난 5월 8.6%라는 40년 만의 기록적인 미국 물가상승률이 대표적이다. 거기에 미국 총국내수요(소비, 투자, 정부지출)는 이미 위기 전 추세에 다가갔다. 매우 빠른 회복이다. 이게 중요한데 2008년 금융위기의 교훈은 경제위기가 남기는 상처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성장, 고용지표가 위기 전으로 돌아가는 데 너무 오래 걸렸고, 심지어 위기 전의 추세를 추억으로 만들어 버렸다. 경제의 성장능력 자체를 갈아먹은 것이다. 그래서 이번 위기 초기에 각국 정부가 재정과 통화 양쪽을 다 쏟아부은 것인데 이제 와서 인플레이션의 원흉으로 지목받고 있다.

사라져야 할 좀비 아이디어 중 하나가 과잉확신편향인데 지나고 나서 그때를 다 알았다고 잘난 척하는 거다. 최근 이전 전염병위기에 대한 연구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사스, 메르스, 에볼라, 지카 등 주요 팬데믹 위기를 금융위기와 비교해 보는 것이다.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기간이 금융위기와 제법 유사하다. 총수요 위축, 대규모 실업 등이 오래갔고, 저숙련노동자와 여성의 실업고통이 더 컸다. 또 팬데믹 위기라고 해서 정부의 개입 없이 스스로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 재정정책을 사용한 국가들이 고통을 덜 겪었다. 즉, 지금 상황은 정부가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기에 빠르게 회복한 것이고, 그것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일부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리고 좀비들이 의도적으로 누락하는 것은 빠른 회복과정에서 우리가 얻은 것이다. 1970년 이후 약 150개의 금융위기를 가지고 분석한 결과 위기로 인해 선진국의 경우 GDP의 35% 정도 누적손실이 발생하고, 50% 이상이 위기가 5년 이상 간다. 이 기간 동안 성장능력에 상처가 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경제적 손실을 줄인 것이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방향 곳곳에도 이런 냄새가 묻어 있다. 최근 과도한 정부개입이 민간의 자율성을 죽이고 있다는 거다. 이 좀비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언제 어디서건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1997년 IMF 외환위기의 해결책도, 2008년 금융위기의 해결책도, 2020년 코로나19 위기의 해결책도 “시장은 선, 정부는 악”이다. 코로나19 위기가 시작되고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재정·통화를 쏟아붓고 고용을 걱정할 때도 규제완화가 위기대응책이라고 외친 게 한국 재계단체였다.

현재의 팬데믹 위기는 공급 충격이라는 점도 기존 경제위기와 다르지만 예상보다는 빠른 회복을 하다가 인플레이션이라는 암초를 만났다는 점이 독특하다. 현 정부 초반은 DJ의 임기 초반과 문재인의 임기 후반을 닮을 가능성이 있다. IMF 외환위기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느라 다른 것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시기 말이다. 인플레이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미국 연준이 기록적인 물가상승률 충격으로 금리 인상에 있어 자이언트스텝으로 돌아선 이후 우리도 당분간 인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한은 금리 상승을 보게 될 것이다. 주식, 가상자산, 부동산 등은 비틀거린다. 시장의 불확실성은 증폭될 것이다. 자, 적어도 세 가지 기준은 세우자.

첫째, IMF 외환위기의 교훈을 잊지 말자. 우리는 회복과정에서 물가상승을 만난 것이지 완치된 게 아니다. 어설픈 자유시장철학으로 재정·통화 양쪽 다 긴축하다 경제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둘째, 1990년대 이래 세계화를 주도한 것은 글로벌 공급망 내 국제무역의 증가이고, 이게 어떻게 위기를 전파시키는지 코로나19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각 국가는 자국중심정책을 내놓을 것이다. 셋째, 완연한 회복국면이 아니다. 다가올 충격에 대비할 재정여력 확보의 필요성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향후 이자율 상승은 국채발행의 여력을 줄일 것이다. 법인세, 주식양도세, 상속세 등 감세시리즈에 신중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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