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이기수 논설위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새 당대표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 당선 발표 뒤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새 당대표가 지난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제5차 정기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대표 당선 발표 뒤 인사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기억하기 쉬운 숫자다. 77.77%.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가 이재명의 압승으로 끝났다. 승부 추가 일찍 기운 전대는 6주간 ‘열성 팬덤’과 ‘당헌 개정’ 설전만 톺아졌다. 그 과정이 지난했다고 정당사에 찍힌 최고 득표율을 도외시할 이유는 없다. 민주당의 선택은 “이재명이 해보라”는 것이었다.

이기수 논설위원

이기수 논설위원

민주당엔 세 갈래의 주류가 있다. 친노친문, 호남, 운동권이다. 그 족보가 없는 이가 당의 핸들을 잡았다. 변방에서 소리 높이고 싸우던 ‘기병 이재명’이 여의도의 가장 큰 ‘성주 이재명’이 된 것이다. 대선 지고 다섯달 만이다. 그로부터 일어날 169석 거야의 요동이 작을 리 없다. 지도부 와해로 제 코가 석자인 국민의힘 포문도 저리 오래 닫혀 있을 리는 없다. 당대표 이재명이 준비한 말은 셋이다. 보약도 독배도 될 수 있는 승부수였다.

#잘하기 경쟁 = 이재명이 정치 복귀의 ‘꿈과 이유’로 삼은 게 있다. 5월 계양산에서 꺼낸 다섯 글자는 8월 전대 대표수락연설과 첫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어졌다. “잘하기 경쟁”이다. 서로 실패·실수만 기다리고 차악(次惡)을 다투는 ‘반사이익 정치’를 끝내자는 것이다. “국민의 삶이 반 발자국이라도 전진할 수 있으면 두 팔 걷어서 돕고, 민주주의·평화·역사의 퇴행과 독주엔 결연하게 맞서 싸우겠다”고 갈라쳤다. 여야가 민생·개혁·미래 의제에 머리를 맞대고, 입법·예산 방향과 실적을 겨루자는 뜻이다. 그대로만 바뀌면, 손호철 교수 말대로 ‘여당복’과 ‘야당복’을 국민이 누리게 된다. 코앞의 정기국회에서 판가름날 얘기다.

#뉴민주당 = 이재명은 새로 만들 민주당은 “유능하고, 강하고, 혁신하고, 통합된 전국정당”이라고 했다. 형용사가 화려할수록,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읽으면 된다. 당 강령에선 ‘소득주도성장’과 ‘1가구 1주택’을 뺐다. 현실에서 길을 내지 못한 도그마 정치를 반성한 것이다. 부수고 고치고 비울 게 그것뿐일까. 다시 부여잡을 것은 ‘민주당다움’이다. 정치개혁·부자감세·차별금지법·기후위기…. 민주당을 찾고 찍을 이유를 민주당이 줘야 한다. 이재명은 채무자 돕는 주빌리은행, 청년배당, 무상교복·산후조리, 지역화폐, 값싼 배달앱의 싹을 틔운 행정가였다. 민주주의 위기는 삶의 위기에서 온다. 뉴민주당의 깃발은 그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보태주는 생활진보여야 한다.

#이기는 민주당 = 1995년 대선·총선·지방선거의 세 축이 잡힌 후 전국선거는 늘 연승·연패로 갈렸다. 국민의힘은 2006년 지방선거부터 2012년 대선까지 ‘이명박근혜’가 6연승을 이끌었고, 민주당은 2014년 지방선거부터 2020년 총선까지 5연승이 가장 길다. 현재는 국민의힘이 3연승(서울·부산 시장 보선-대선-지선) 중이다. 꺾이면 반전이 쉽잖다는 뜻이다. 이재명이 “이기는 민주당”을 약속했다. 2024년 총선, 민주당은 이길까 질까 비길까. 이재명의 정치도 갈림길에 선다.

전대가 끝나고 무대는 닫혔다. 이재명은 답할 게 생겼다.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들’(양심의 아들)로 불리는 팬클럽이다. 2000년 정치팬덤을 세상에 알린 ‘노사모’는 경쟁자 험담과 잘난 체가 없기로 유별났다. 그들이 사랑한 ‘바보 노무현’에 빛과 시선이 가게 절제했고, 대선 후엔 ‘노무현의 감시자’를 자처했다. 팬덤이 격해진 건 노무현 서거, 박근혜 탄핵을 겪으면서다. ‘문꿀오소리’는 문재인에 반기 든 모든 이를 공격했고, ‘박사모’는 박근혜만 사수하는 극렬시위자가 됐다. 훗날 민주당이 사과한 2020년 ‘위성정당’과 2021년 ‘서울·부산 시장 선거 출마’ 당헌 개정도 강성당원이 주도했다. 팬덤은 천차만별이다. 다섯달 전 출범한 개딸과 양아들은 무엇을 반면교사할지 선택해야 한다.

당대표는 ‘양날의 칼’이다. 무게가 커질수록 당 안팎의 견제는 세진다. 이재명은 사법리스크를 넘고, 비토층 맘도 돌려야 한다. 정도는 없다. 삶의 현장에서 더 많이 웃고 울고, 말은 진솔하고, 몇배 더 따뜻해져야 한다.

우스갯말로, 정치 리더에겐 ‘쓸개’가 중요하다. 그것이 크면 담대(膽大)하고, 없으면 ‘줏대 없다’는 소릴 듣는다. 경쟁자에겐 간담(肝膽)을 서늘케 해야 한다. 결정할 게 쌓이면 이재명도 쓸개를 떠올리면 좋을 듯싶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이다. 하루하루 개혁적인지 민주적인지 통합적인지 이기는 길인지 자문할 시간이다. 호미질(성남시장)·쟁기질(경기지사)을 마친 이재명은 이제 트랙터(대통령)를 몰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도 묻고 논쟁할 것이다. 이재명은 대통령감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그 바로미터가 될 2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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