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같은 야당이 되길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 여러 명을 연달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2024년 있을 총선을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총선 걱정은 마시라고, 민주당이 다시 다수당이 될 거라고 말했다. 근거는 바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에 있다. 이들이 권력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집권 초 지지율이 폭락했다가 중반에 반등시킨 사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있지만, 이를 가능하게 했던 정치인 이명박의 연륜이 정치인 윤석열에게는 없다.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이범 교육평론가·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나는 오히려 다음 대선이 어려울 거라고 했다. 민주당에 이재명 대표라는 원톱 플레이어 외에는 다른 변변한 주자가 안 보인다. 김부겸과 유시민이라는 다크호스가 있지만 은퇴한 인물들이고, 민주당에 재난 수준의 변고가 일어나지 않는 한 나설 명분이 없다.

반면 국민의힘 당내 경선을 상상해보자. 오세훈, 안철수, 이준석, 홍준표, 한동훈이 나서 치열하면서도 재미있는 경선을 벌인다면? 역대급 흥행을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대체로 윤 대통령과 무관하거나 심지어 그에 대하여 각을 세웠음을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다. 마침 윤 대통령은 역대 어떤 대통령보다도 정당 소속감이 약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마치 이명박 뒤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는 것을 ‘정권교체’라고 인식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처럼(당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려 50.1%가 그렇게 느꼈다), 윤석열 뒤에 누가 후보가 되어도 ‘정권교체’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여러모로 차기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대선의 윤석열 후보보다 버거운 상대와 맞붙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는 총선에 매몰되지 않는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전쟁입니다.” 이재명 대표에게 검찰에 출두하라는 통보가 왔음을 알린 보좌진의 메시지가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어 화제가 되었다. 물론 야당은 잘 싸워야 제맛이고, 싸울 명분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도 안 되어 정치판에 ‘전쟁’이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국민들의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해주는 단어는 바로 ‘불안’이다. 임기 말에 지지율이 낮아진 거라면 욕 몇마디 해주고 나서 다음 선거에 야당을 밀어주면 된다. 하지만 지금은 남은 임기가 무려 4년 반이 넘는다. 이미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이르렀으니 모든 것이 불안하다. 태풍이 닥치면 저들이 재난 대응을 잘해낼지 불안하다. 환율이 오르면 외환위기 가능성을 잘 막아낼지 불안하다. LNG 비축량이 모자란다던데 겨울나기가 불안하다. 누군가 방한하면 또 패싱하지 않을지 불안하고, 용산 이전이나 5세 취학 같은 게 또 불쑥 튀어나오지 않을지 불안하다. 무엇보다 이런 불안을 4년 넘게 견뎌야 하니 국민들은 그게 제일 불안하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여당 같은 야당’이다. “싸우면서 일하자”는 구호처럼, 전쟁은 전쟁대로 수행하더라도 당면한 위기 가능성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당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코로나 초기에 ‘코로나 국난극복 특위’를 만들지 않았나? 여당일 때 했던 걸 야당이라고 못할 것도 없다. 상시 국회를 소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정부 자산 매각을 막기 위한 특별법, LNG 확보를 위한 특별법, 전세사기를 막기 위한 특별법(정부 대책에는 허점이 있다) 등을 제정하고 경제위기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장관과 관료들을 출석시켜 계속 닦달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이 꾸준히 이뤄질 때 광범위한 중도층의 신뢰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총선 전략은 물론 대선 전략도 상당 부분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단기적 불안이 주로 경제 및 지정학적 요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장기적 불안은 기후변화와 아울러 끝없이 떨어지는 출생률에 있다. 지난주 발표된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출생률이 0.75까지 떨어졌고, 무엇보다 하락률이 더욱 가팔라졌다. 청년 및 미성년 세대의 미래에는 엄청난 노인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디스토피아가 펼쳐질 것이 확정적이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전 국민에게 50만원씩 주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아이를 낳은 여성에게 1억원씩 주는 포퓰리즘이다. 그렇게 해도 정부 예산의 4%밖에 안 들어가니, 8%를 들여 2억원씩 주는 것도 가능하지 싶다.

지금 국민들이 원하는 야당 대표는 국민들의 불안을 극대화하여 본인의 입지에 활용하는 대표가 아니라 국민들의 불안지수를 낮추기 위해 심지어 본인의 고집도 스스로 꺾을 수 있는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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