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비교의 묘미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조선후기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이제 한·일 비교사(주로 조선후기와 도쿠가와 막부시대 비교)가 조금씩 가능해지고 있다. 막연한 인상 속의 사안들을 학문적으로 증명하는 경험은 짜릿하다. 그 시절에도 한국과 일본은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사회였다.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눈에 띄는 것은 문인(양반)-무인(사무라이)이라는 지배층의 차이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현격한 것이어서 일본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까지 지배층이 상시 무장을 했던 사회일 것이다. 사무라이는 두 개의 칼을 항상 패용하고 다녔는데, 무기 사용은 정당방위 때만 허용되는 게 아니었다. 예를 들면 평민이 심각한 무례를 범했을 때 그를 베는 것이 가능했다(기리스테 고멘·切捨御免). 이에 비해 조선은 비무장에 가까운 사회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역을 지지 않는 양반과 무기의 거리는 더욱 멀었다.

도시화율의 비교도 선명하다. 18세기 일본은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에 전 인구의 5∼6%가 살고 있었다. 동 시기 유럽은 10만 이상의 도시에 2%의 인구가 거주했을 뿐이다. 에도(도쿄)에 100만명, 오사카·교토에 각 3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았을 뿐 아니라 5만∼10만명에 이르는 조카마치(城下町·영주의 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가 즐비했다.

반면 조선은 비교적 높은 농업생산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도시 발달이 더뎠다. 수도 한성이 30만명이 못 되었고, 그 밖에 조카마치 수준의 도시는 평양·개성·대구 등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일본은 전국시대가 끝나면서 지방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모든 사무라이들을 조카마치에 강제이주시켰다(병농분리). 순수한 소비계층인 무인들이 대거 집주하게 되니 자연히 이를 지탱하는 상업 발달과 인구 증가가 전개된 것이다. 조선의 지방양반들은 기본적으로 도시에 살지 않고 하회마을 같은 데서 살았다. 각 군(郡)의 도시라 할 읍(邑)에는 양반이 아니라 서리나 상인들이 거주했다. 일본인 하면 떠오르는 ‘규율, 질서, 복종, 위생’ 등등은 군사사회와 도시문화에서 오랫동안 배양되어 온 것일 것이다. 실제로 도쿠가와 시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들은 거리의 일본인들이 행렬을 구경하면서도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떠들지 않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도시와 상업이 이렇게 발달했다면 사회적, 지역적 유동성도 일본 쪽이 높을 거 같은데, 실제는 달랐다. 일본은 조선보다 더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사무라이-상인(조닌·町人)-농민-부락민(천민)으로 엄격히 구분됐을 뿐 아니라, 각 신분 내에서도 계층 차는 강력하게 유지되었다. 신분만이 아니라 직업도 잘 바꾸지 못했다(않았다). 초밥집을 하는 이에(家)의 자손은 으레 그 일을 평생의 업으로 알고 살았다. 대가 끊기거나 있더라도 초밥집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될 때는 재능 있는 양자를 들여 초밥집을 유지했다. 때로는 성이 다른 사람이 양자로 들어오기도 했다. 혈연보다 가업을 앞세우는 것이다. 이러니 그 초밥이 맛없을 수가 있겠는가, 그 초밥집이 오래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성(姓)은 혈연의 이름이자, 이에가의 상호(商號)였다. 일본 회사나 가게 이름에 스즈키, 다나카 등 곧잘 성이 붙어 있는 이유다. 거기에 비하면 조선의 가문은 무엇보다 혈연이 최우선이다. 대가 끊기면 재능보다는 같은 혈연의 양자를 들였다. 타성양자(他姓養子)란 생각하기 어려웠다. 직업은 자주 바뀌었다. 구한말 서울 종로를 방문한 한 일본인이 “어떻게 1년을 가는 가게가 없나”며 놀라더라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지금도 우리 아파트 앞 상가는 잠시 방심하면 다른 가게가 들어와 있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한다. 이왕이면 이런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며 일본 사회를 관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초밥집 주인에게 영업한 지 얼마나 되었냐고 한번 물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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