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이층

사랑하는 남녀가 이층을 지을 때(<만다라> 김성동), 별똥별 하나가 지붕을 타고 굴뚝으로 선물처럼 들어와 다리 사이로 떨어지는 것을 둘은 까맣게 몰랐다. 9개월 후, 그 다리 밑에서 누가 울었다. 얼른 포대기에 담아 주워 온 게 볼 붉은 핏덩이. 누구나 공유하는 인간 출생의 비밀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많은 질문을 하지만 사실은 이리도 싱겁고 간단하다.

베토벤의 일생을 다룬 <불멸의 연인>을 오랜만에 다시 보는데 처음인 듯 생소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연구에 따르면 이 위대한 음악가의 영혼을 사로잡은 여인이 몇몇 있다고 한다. 베토벤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오로지 한 여인은 누구일까. 간발의 차이로 베토벤이 보낸 편지는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던 그 여인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운명이 바뀐 두 연인. 그로 인해 벌어진 오해가 평생을 휘감는다. 복수심도 어느 정도 작용하였을까. 사랑했던 여인은 베토벤의 제수씨가 되어 베토벤의 인생과 또 얽힌다.

한때의 사랑했던 만큼의 깊이로 더욱더 그 여인을 모욕하고 저주한다. 여인도 베토벤을 냉대하면서 자신의 울타리에 한 발짝도 들여놓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나란히 나이가 들고, 베토벤이 지휘하는 마지막 무대. <환희의 송가>를 들으면서 이런 작품을 작곡한 이는 차마 미워할 수 없다며 그 여인은 베토벤을 마침내 용서한다. 그리고 베토벤이 죽은 뒤, 간발의 차이로 받지 못했던 그때 그날의 그 편지를 전달받는다. 뒤늦게 어긋난 진실을 알고 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불멸의 여인.

그 기나긴 오해와 짧은 이해로 얽힌 영화의 마지막은 통나무집에서 여인이 베토벤의 편지를 읽는 장면이다. 카메라가 서서히 뒤로 빠지면서 편지, 여인의 얼굴, 유리창, 통나무집의 다락 같은 이층을 비춘다. 작아진 사물들이 한 프레임에 섞이면서 끝. 이름들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는데, 우리네 일생이 모두 저와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한 지붕 아래, 유리창에 갇힌 좁은 시야. 더러 오해로 인한 뜻밖의 어긋남. 하늘에 닿지 못하고 지상을 딛지 못한 엉거주춤한 상태의 이층을 무대로.

그러니 이런 명제는 어떨까.

인간은 이층에서 태어나 이층에서 살다가 이층에서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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