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모실까요? ‘순한맛’ ‘매운맛’ ‘폭탄맛’

이명희 사회에디터

#“애들도 다 컸고 우리 부부 쓸 만큼만 벌면 되는데 밤에 뭐 하러 다녀요. 코로나 이후 식당도 늦게까지 영업을 안 해서 밥 먹을 데도 없다니까요,”(65세 개인택시 운전기사)

이명희 사회에디터

이명희 사회에디터

한 달 전쯤. 회사 앞에서 택시를 탔을 때다. “손님만 내려주고 나도 그만 들어가야겠다.” 기사가 혼잣말을 했다. 한창 손님 태우고 다닐 시간인데, “왜 벌써 들어가냐”고 물었다. 그는 돈은 좀 적게 벌더라도 건강하게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난 콜 안 받아요. 길에서 손 흔드는 사람 무조건 태워요. 호출받아 봐야 귀찮기만 하고. 정부가 호출료 올려주겠다고 하던데 어차피 우리한테는 오지도 않아요. 손님들이 비싸다고 택시 안 타면 우리만 더 힘들어질 텐데….”(52세 법인택시 운전기사)

지난 주말, 종로에서 택시를 호출해봤지만 어림없었다. 빨간등 켜진 ‘빈차’를 향해 손을 흔들기를 20여분. 운이 좋았다. 택시에 가까스로 몸을 욱여넣자 “기사님, 고맙습니다”란 말이 절로 나왔다.

#“거리 두기 풀리고 밤에 손님이 늘긴 했어요. 요샌 오후 5시쯤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10시쯤 집에 들어와요. 몸은 고돼도 야간에 일해야 수입이 좋으니까. 법인택시 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사납금 채우고 이것저것 떼고 나면 남는 게 있나.”(69세 개인택시 운전기사)

출입처에서 인연을 맺은 한 공무원의 아버지는 야간에만 일을 한다. 그의 아버지는 법인택시를 몰다가 지금은 개인택시를 운행하는데 고급 택시인 블랙 운행이 목표라고 한다. 호출과 예약제로만 운영하는 카카오블랙 같은 택시는 아무래도 몸이 덜 힘들고 수입도 좋기 때문이다.

이 해법에 ‘집 나간 기사’ 돌아올까

택시기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관계에 따라 생존의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다. 힘든 건 승객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을라치면, 부아가 치민다. “왜 우리는 ‘우버’가 없을까?” “그러게 ‘타다’는 왜 못하게 해놓고선….”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이래저래 택시는 오늘도 불만을 싣고 달린다.

심야 ‘택시 대란’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거리 두기를 하느라 그동안 잊고 있었을 뿐. 택시 잡기 힘들다는 원성이 커지자 정부는 이달 초 ‘심야 택시난 완화 대책’을 내놨다. 요금은 올리고 규제를 풀어서 승객이 몰리는 밤에 택시 수급을 늘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월3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심야 택시 대란 해소를 위한 대책으로 ‘순한맛’ ‘매운맛’ ‘폭탄맛’ 단계별 도입을 언급하기도 했다. ‘순한맛’은 심야탄력요금(할증)제 확대와 개인택시 부제 해제, ‘매운맛’은 강제 배차, ‘폭탄맛’은 우버·타다 등 차량 공유 서비스 규제 완화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근본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 개인택시 부제를 해제한다고 밤 운행을 기피하는 고령의 기사들이 거리로 나설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심야 운행에는 법인택시의 역할이 절대적인데 정부는 기사의 수입안정 대책으로 호출료 인상만 제시했다. 이 정도로 ‘집 나간’ 기사들이 돌아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호출료 인상은 자칫 기사 몫은 늘지 않고 택시 앱을 만든 회사 배만 불리는 꼴이 될 수 있다.

국토부의 대책과 별개로 서울시는 기본요금을 기존 3800원에서 4800원으로 올리고, 심야 요금을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가뜩이나 지갑이 얄팍해졌는데 택시비까지 오르는 것이다. 이제 귀가 걱정은 안 해도 되는 걸까. 요금을 올려 택시난이 해결되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리된다는 보장도 없다. 원 장관은 ‘순한맛’과 ‘매운맛’으로도 승차난이 개선되지 않으면 ‘폭탄맛’ 대책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타다와 우버 등 플랫폼 운송사업을 활성화한다는 의미다.

디지털 시대 노동 변화 고민해야

한국 사회는 심야 택시 대란을 계기로 ‘승차공유 서비스’ 문제와 다시 맞닥뜨렸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시대를 고민해야 한다. IT를 기반으로 한 세상에 없던 서비스가 큰 변화를 일으키는 시대 아닌가. 좋든 싫든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일이 일상이 된 세상을 거스를 수는 없다. 하지만 호출 중개 수수료로 누군가가 큰돈을 벌면 땀 흘려 운전하는 사람들의 삶도 나아져야 한다. 이는 택시업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노동 4.0>의 저자인 이명호 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는 “디지털 기술 때문에 노동이 맞을 급격한 변화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어디로 모실까요?


Today`s HOT
해리슨 튤립 축제 올림픽 앞둔 프랑스 노동절 시위 케냐 유명 사파리 관광지 폭우로 침수 경찰과 충돌한 이스탄불 노동절 집회 시위대
인도 스리 파르타샤 전차 축제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 노동자의 날 집회
시위대 향해 페퍼 스프레이 뿌리는 경관들 인도 카사라, 마른땅 위 우물
토네이도로 쑥대밭된 오클라호마 마을 페루 버스 계곡 아래로 추락 불타는 해리포터 성 체감 50도, 필리핀 덮친 폭염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