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이명희 사회에디터

출발은 ‘자유’였다.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18일 언론 자유를 강조하며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이명희 사회에디터

이명희 사회에디터

실제 윤 대통령은 입만 열면 ‘자유’를 얘기한다. 취임식, 광복절, 유엔총회 연설에서 수십 차례 ‘자유’라는 낱말을 반복했다. 대학교수 아들인 데다,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검사 출신에 정치 경험 없이 단번에 대통령이 된 윤석열.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자유’의 개념은 대체 무엇일까.

윤 대통령 취임 6개월이 지났는데 그 자유가 뭘 말하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잘 모르겠다. 적어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짐은 말뿐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고등학생의 정권 풍자 만화가 불편하다고 문화체육관광부를 통해 엄중 경고를 내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과거 발언을 짚어 보면 자유에 대한 대통령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긴 하다. 지난해 12월22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때, 윤 대통령은 전북대 간담회에서 “극빈의 생활을 하고 배운 게 없는 사람은 자유가 뭔지 모를 뿐 아니라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해 저소득·저학력 계층 비하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당시 윤 후보의 해명대로 문제가 된 발언은 이들에게 정부가 지원을 더 해야 한단 취지로 보인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운 게 없다면 자유를 모르고 바라지 않을 것이란 인식은 터무니없다. 윤 대통령 머릿속에선 자유를 보편적 가치가 아닌 배우고, 가진 자만 누릴 수 있는 ‘그들만의 특권’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자신이 허용하는 ‘선택적 자유’에 가깝다. 그나마 거기에 ‘언론의 자유’는 없었던 것인가.

그의 ‘선택적 자유’에 언론은 없다

윤 대통령이 지난 미국 순방에서의 ‘비속어 논란’을 처음 보도한 MBC 취재진에게 기어코 ‘불경의 죄’를 물었나 보다. 대통령실은 동남아시아 순방에 ‘MBC 기자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를 통보했다. 감당할 수 없는 죽음이 발생했는데도 정부가 이태원 참사와 무관함을 드러내려 경찰과 소방관 등 현장에만 책임을 돌리던 와중이었다. “어이가 없네”란 말이 절로 나올 판이다.

특정 언론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막더니 4박6일 순방 일정에선 기자단의 취재도 제한했다. 보여주는 것만 보고, 들려주는 것만 들으라는 것인가. 대통령실의 이번 결정으로 시작된 언론 통제 논란은 진행형이다. 거의 모든 언론사와 언론단체가 비판성명에 동참했다. 국제기자연맹(IFJ)은 15일 “위험한 선례”라며 규탄 논평을 냈다. 하루 앞서 한국기자협회 등은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을 직권남용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따지고 보면 ‘비속어 논란’은 대통령이 사과했으면 진즉에 끝날 일이었다. 설사 보도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반론 게재를 청구하는 등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 부디 ‘니들도 똑같지 않았느냐’고 역대 정권과 비교하지 말기 바란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윤 대통령은 전임자들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니까.

기자이자 작가였던 조지 오웰은 “자유가 무엇인가를 뜻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다”라고 했다. 지금 이 순간 이 문장을 굳이 인용해야 하는 현실이 민망하다. 언론의 자유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신문에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일인지 새삼 느껴진다. 오웰은 또 말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네 가지. 순전한 자기만족,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을 꼽았다.

이제라도 폼나게 사과하시라

나는 왜 쓰는가. 확실히 말할 수 없다. 뭘 쓸 것인가. 철 지난 타령이 되지 않으려면 마감 시점에 논쟁적인 이슈를 써야 한다. 다 아는, 뻔한 얘기 말고. 돌이켜보건대 나도 뻔한 얘기만 썼다. ‘정치적 목적’을 이룬 글을 쓰고 싶지만, 한 달에 한 번 쓰는 칼럼도 끙끙대는 나로서는 남들도 나처럼 생각해야 한다며 괴롭히기 십상이다. 그래도 밥값을 하려면 써야 한다.

영화 <더 포스트>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닉슨 정부의 거짓말이 담긴 기밀문서 ‘펜타곤 문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WP)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리프)은 “언론은 늘 옳거나 완벽하지는 않지만 계속 써 나가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알았으면 한다. 절대다수의 기자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폼나게’ 사과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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