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의 농민의원이 필요해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그렇지만 한국 역시 농업은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영역이다. 해가 다르게 예상할 수 없는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작물 재배를 어렵게 할 뿐 아니라 야외에서의 논밭 일도 힘들어지고 판매도 불안해진다. 날씨가 불리해질수록 농민들은 시설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정부가 권하는 스마트팜과 정밀 농업은 더욱 비용이 들기에 소농은 갈수록 설 곳이 없어진다. 유엔과 세계의 농업 연구기관들은 유기농과 소농이 온실가스 감축의 유력한 대안이라고 말하는데 한국의 상황은 반대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지난해에 가까운 선배들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나는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만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감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느냐고. 놀랍게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아마도 농식품부에 대한 기대치가 제로에 가까운 탓일 것이다.

지금도 한국의 공식 온실가스 배출 통계에서 농업 부문의 비중은 3.1%다. 논밭 위에서 그리고 축사에서 직접 배출하는 온실가스만 농업 배출로 산정하는 탓이다. 예를 들어 화학비료는 농업에서 사용하더라도 산업공정이나 에너지 부문 배출로 계산된다. 낮은 식량 자급률로 인한 국외 농업 배출도 포함되지 않고, 마트에서 식품 유통을 위해 쓰는 에너지로 인한 배출도 제외된다. 세계의 온실가스 배출 통계는 식품 부문이 26%, 식품 폐기까지 포함하면 34%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격차가 크다. 이러하니 한국 농식품부는 온실가스 감축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농업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구상을 하기보다는 농민에게는 각종 보조금을 나눠주고 첨단기술 농업을 육성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농업은 전망이 없는 직업이고 확실히 돈이 될 아이템이 아니면 투자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치부된 지 오래다. 한편 쌀값 폭락 우려 속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논란이 되고 있다. 쌀 소비 감소 경향과 기후변화 속에서 쌀 농사의 적정 규모와 지원 방식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느 방향이 장기적으로 올바르고 단기적으로 효과적인지 판단하기 쉽지는 않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한 것은 있다. 양곡관리법을 논의하는 국회에 농민 당사자는 없고 농업이 한국의 미래에 가져야 할 위상을 자기 일로 고민하는 정치인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장관 후보감에 대한 질문에 이어 지금 국회에 농민 출신 의원이 있는지를 따져 보았다. 역시 없다. 강기갑 의원 이후엔 농업 비중이 큰 지역구 의원 말고는 농민과 농촌을 대변할 의원조차 찾기 어렵다. 기후위기 속의 농업과 농촌이 갖는 잠재력을 진지하게 논의할 사람이 제도권 내에 없는데 개별 정책과 제도 논의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가을걷이를 끝낸 농민들이 여의도로 트랙터를 몰고 나와 목이 쉬도록 외치겠지만 국회의 담장은 높기만 하다.

한국의 농가 인구가 크게 줄었다고 해도 220만명 정도이니 총인구 5146만명 중에 4.3% 정도 된다.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이니 단순하게 계산하면 농민 의원이 12.6명이 되어야 정상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할 일이 적을 법조인과 전문직 출신 의원들은 차고 넘치는데 기후위기 최전선을 대변할 의원은 전무하다. 농민의원 12명은 한국이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한 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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