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고 ‘윤석열 케어’로 바꿔라

이명희 사회에디터

나만 그런가. 처방전이나 약 봉지에 찍힌 공단부담금을 보면 돈 굳은 거 같아 뿌듯하다. 덜컥 병이라도 걸리면 큰일이다 싶어 가입한 실손의료보험은 돈만 내고 타먹지 못하니 손해 같다. 없는 병을 만들어 일부러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본전 생각이 난다. 그래서인가. 몇 달 전 허리가 불편해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난데없는 체외충격파 시술을 권해 어이없어 한 적이 있다.

‘도덕적 해이’에만 초점은 의아

이명희 사회에디터

이명희 사회에디터

사정이 이렇다보니 ‘선’(線)을 넘는 이들이 있긴 하다. 지난해 1년 동안 외래 의료 이용 횟수가 365회를 넘은 사람이 2550명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의료 남용 사례는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 한국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은 65% 수준으로 80%가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국가에 견줘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취약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때문에 너나없이 든 실손보험 가입자가 약 4000만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추진했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문케어)’를 폐기하는 방향으로 건강보험 개편을 공식화했다. ‘문케어’는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2023년을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추진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연일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윤 대통령은 건강보험 제도 개편을 ‘정의’의 문제로 규정했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이 ‘정의’의 논점을 굳이 안 받아도 되는 의료 서비스를 ‘공짜’라서 받는 국민의 ‘도덕적 해이’에만 국한시켰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정부의 건강보험 제도 개편과 관련해 “건보 제도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다른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것을 없애고 우리 보험 제도를 정의롭게 다시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추진 취지를 밝혔다.

결국 ‘문케어로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고 있으니 ‘선량한’ 국민들을 위해 ‘의료 혜택을 줄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문케어로 부작용이 나타난 건 사실이다. 바로 과잉진료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그간 높은 비용 때문에 받지 못했던 의료 서비스가 몰린 측면도 있다. MRI 비용이 싸졌다고 검사를 반복해서 받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부가 사실상 복지에 가까운 건강보험의 개편을 추진하면서 ‘도덕적 해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난치병과 생활고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수원 세 모녀’의 비극은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도덕적 해이’를 차단한다는 명목으로 건강보험의 방향 자체를 되돌린다면, 그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 아니겠는가.

윤 정부 건보 개편 방향에 의구심

정부의 건강보험 개편 기류를 지켜보면서 여러 해 전 출장을 갔던 쿠바가 떠올랐다. 쿠바는 빈국이면서도 무상의료를 고수하고 있다. 아바나에서 만난 의사 에르네스토 마쿠는 “쿠바는 한국보다 가난하지만 모든 국민에게 의료를 무료로 지원한다”며 “무상의료 대상에서 성전환·성형수술 등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누군가 불행하다면 무료로 해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당시 이 말이 꽤 인상적이었다. “단 한 명의 인간의 생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의 전 재산보다도 100만배나 더 가치가 있다”는 체 게바라의 말처럼 물질보다 인간의 가치를 우선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개편이 보장 축소가 아니라고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건보 개편 방향에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줄곧 건보의 재정 건전성 강화를 강조해왔다.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트위터에는 ‘윤석열 당선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사라질 것들과 생길 것들’이라는 글이 확산됐다. 이 안에는 ‘사라질 것은 의료보험, 생길 것은 의료민영화’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여권은 즉각 ‘가짜뉴스’라고 반박했다. 분명한 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는 건 포퓰리즘이 아니라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계속되어야 한다. 문케어가 마음에 걸린다면 ‘윤석열 케어’로 바꾸면 된다.

돌아보면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자기 편보다 못났거나 적어도 자기편과 비슷한 집단을 고르는 데 몰두했다. 나는 그 세계가 막연하면서도 두렵다. “돈 걱정 하지 않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강조한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길 바란다. 해가 또 간다. 새해에는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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