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러더의 신어와 대통령의 ‘자유’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빅 브러더가 지배하던 오세아니아국에서는 ‘신어’를 사용했다. 빅 브러더가 보기에 불순한 이단적인 사고가 “적어도 사고가 말에 의존하는 한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의도에서였다”. 그래서 기존의 언어와는 다른 언어법칙이 만들어지고 계속 새로운 신어사전을 편찬해서 보급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자유로운(FREE)”이란 단어는 ‘정치적 자유’나 ‘지적 자유’와 같은 뜻으로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언어를 통해서 사고를 통제하려는 시도였다.

시인 나희덕이 정확하게 포착해낸 것처럼 구동독 정보국은 <서정시>라는 파일을 만들어 관리했다. 시인은 <파일명 서정시>라는 시에서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때문에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고 말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서정시마저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역사는 의외로 많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용하는 언어도 본질적으로 이 맥락과 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취임사에서부터 가장 많이 사용하고 강조하는 말이 ‘자유’다. 워낙 ‘자유’를 강조하다 보니 ‘자유민주주의’를 교과서에 실으려고까지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실제로는 자유와는 정반대의 행태를 보이는 점이다. MBC 기자를 대통령 외국 순방 전용기에 타지 못하도록 한 일은 언론탄압이다.

대통령 말하는 대로 따르길 바라나

언론기관들과 단체들, 외국에서도 이런 문제를 비판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저는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언론의 책임이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 자유에 대통령의 인식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정부의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시정연설에서는 “우리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껍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주택 예산을 5조원 넘게 깎는 등 서민과 경제적 약자들을 위한 예산은 대폭 삭감한 예산안이고, 누가 봐도 부자 감세를 기조로 한 예산안이 뻔한데도 정부는 ‘약자 복지’로 우겨댄다.

이런 식의 말은 정책으로도 연결된다. 10·29 이태원 참사 직후 국가애도기간을 재빨리 설정하고 사진도, 이름도 없는 분향소를 만들었으며, 행안부는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바꾸도록 했으며, 근조 리본을 글자 없는 뒷면만 달게 하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 그러면서 국가애도기간에 그는 매일 분향소를 찾았다. 그리고 사과로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다 보니 참사의 책임자들도 죄송한 ‘마음’만 강조하고, 직을 사퇴하는 등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의 언어 사용법이 정착되면, 이후에 ‘언론의 자유’가 ‘언론의 책무’를 의미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전에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식의 화법을 자주 구사했다. 대표적인 게 “비정상의 정상화”이다. 오로지 자신만이 정상성을 독점하고 있는 듯한 오만함의 결과는 탄핵이었다. 소통되지 않는 말은, 자신만의 말을 반복하는 일은 사람들의 분노를 키운다. 사과할 것은 제대로 사과하고, 비판받으면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할 텐데 그러지를 않으니 답답하다.

빅 브러더가 지배하던 오세아니아국의 강령은 세 가지였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예속이다’

‘무지는 힘이다’.

모순적인 단어로 구성된 이 단문들은 뜯어보면 참으로 무시무시한 내용이다. 빅 브러더가 천명하는 정책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따르기만 하라는 것이다. 생각없이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국민들이 따라오기를 바라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너무도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공감의 언어 되살리는 게 중요

조지 오웰은 <1984년> 그때의 오세아니아국의 신어가 정착되는 해를 2050년으로 잡았다. 지금과 같은 오염된 언어 사용법이 그대로 방치되면 2050년에는 전혀 다른 의미의 언어가 사용될지 모른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 공감의 언어를 되살리는 일은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은 이태원에서 참사로 희생된 이들이 말하게 하고, 그들과 함께 슬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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