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앞에서 단식농성 중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12월16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49재가 이태원에서 있었다. 날은 무척 추웠지만 사람들은 이태원 도로를 메웠다. 화면에는 젊은이들 영정이 이름과 함께 올라왔다. 모두 한창 나이였다. 우리 딸들처럼 환한 얼굴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아들을, 딸을, 언니를, 동생을 잃은 유가족들이 무대에서 편지를 읽었다. 갑작스럽게 맞은 가족의 부재 앞에 그들은 그리움과 회한을 말했다. 그리고 정부의 잘못된 처사에 분노했다. 그럴 때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울었다. 이태원 유가족들도, 세월호 유가족들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고, 참석한 시민들도 울었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4·16재단 상임이사

그런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힘내세요”밖엔 없는 것이었을까. 곳곳에서 흐느끼는 유가족들에게 누군지 모르는 시민들이 “힘내세요” 하며 격려의 말을 전했지만, 그 말은 어두운 겨울 하늘로 흩어졌다. 유가족들은 49일 동안 온몸의 힘을 쥐어짜면서 견디어왔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정부, 그리고 혐오 막말의 2차 가해로 인해 상처를 입을 대로 입어 오면서도 이들은 유가족협의회를 만들었고, 이날 시민추모제에 붉은색 목도리를 두르고 참석했다.

나는 국회 앞 농성장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여의도 국회 앞은 유난히 더 춥다. 한강에서 올라오는 거침없는 바람은 두꺼운 방한복으로 무장한 살갗을 파고든다. 한파까지 몰아친 영하의 날씨에 나만 이러고 있는 게 아니다. 오늘로 단식 21일차를 맞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이 있고, 올해만 세 번째 단식하는 택배노동자도 있다. 이들은 노조법 2조, 3조 개정(노란봉투법)을 요구한다. 화물연대 이봉주 본부장은 단식 7일째다.

노란봉투법은 공생의 절박한 몸짓

나는 뒤늦게 이들의 단식농성 대오에 합류했다. 내가 대표로 있는 시민단체 ‘손잡고’는 8년 전 창립 때부터 노란봉투법 입법을 위해서 활동해왔다. 노동자들이 단체행동(파업)을 할 때마다 불법 딱지를 붙이고, 노동조합과 노조원들에게 수십억, 수백억원의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청구해온 잘못된 관행을 입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성공한 나라라고 하지만 그 민주주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였다.

어느 때부터 노동과 시민은 분리되었다. 시민의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임금을 받고, 이 임금소득으로 가족들이 먹고산다. 그러면 당연히 시민들의 대부분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남의 얘기인 것 같은 허상이 시민들의 의식에 자리 잡았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주장한 것은 ‘안전운임제’였다. 정부에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면서 16일간 파업을 벌였는데 그들은 어느새 귀족노조가 되어 버렸다. 정부는 그 귀족노조 노조원들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벌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꾸려고 손잡고에서는 ‘퀴즈쇼 <노란봉투를 열어라>’를 기획하고, 추진 중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노란봉투법’을 황건적법, 불법파업조장법이라고 하더니, 그제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불법파업조작법이자 안심파업법”이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동안 사용자가 저질러온 불법파견, 부당노동행위, 근로기준법 위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등 무수한 불법행위는 거론조차 하지 않는다.

노란봉투법은 시민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함께 살자는 절박한 몸짓이다. 죽으라고 반대만 일삼는 경총, 대한상공회의소, 전경련, 국민의힘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에 밀려서일까? 더불어민주당은 아직도 머뭇거리고 주춤거린다. 사람 좀 살리자는 노란봉투법을 외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노동자들을 시민으로 보지 않고,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일까?

죽지 않고 같이 사는 세상 만들어야

이런 물음 속에 단식농성을 한다. 내 눈에는 이태원 참사의 죽음 위에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습니까”라는 구호가 겹쳐 보인다. 죽음의 노동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산재 참사도, 사회적 참사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생명과 안전의 가치가 우선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자는 게 노란봉투법 입법운동의 취지다. 이제 사람들이 죽고 난 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사람이 죽지 않고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 그 첫걸음으로 노란봉투법이 입법되기를 희망하면서 국회 앞에 앉아 있다. 나의 바람은 헛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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