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은 왜 이리 정직할까

이창민 한양대 교수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한 연구에 따르면 93%가 하루에 한 번 이상의 거짓말을 한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 10분 만에 거짓말을 세 번 한다는 결과도 있다. 이 정도면 거짓말은 그냥 일상이고 차라리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를 궁금해하는 게 낫다. 또 거짓말이 이렇게 만연한다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그다지 큰 피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거짓말이 가져오는 효과가 크다면 세상은 벌써 파국으로 치달았어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거짓말은 결과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처음 두 가지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이득, 듣는 사람도 이득인 모두가 좋아지는 거짓말,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손해, 듣는 사람만 이득인 희생형 거짓말이다. 이건 이미 잘 알려진 하얀 거짓말(white lie)인데 플라시보 효과가 대표적이다. 환자에게 거짓말을 해서 환자가 좋아진다면 좋은 일이다. 다만 그 거짓말로 인해 의사 개인의 평판이 좋아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쨌든 손익을 더해보면 사회적으로 좋은 일일 것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지금 당장의 선의의 거짓말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미래의 자기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도 국민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공공적 관점을 가진 리더에게 하얀 거짓말은 자연스러운 덕목이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사회가 돌아가는 판을 보면 아주 요지경이다. 레고랜드발 금융경색이나 이태원 참사나 사과는커녕 책임 떠넘기기 경쟁이 아주 가관이다. 현 정권 핵심들은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질 마음은 없어 보인다. 김진태는 ‘조금 미안’하고, 김은혜는 ‘웃기고 있고’, 이상민은 ‘폼나게 사표’를 못 던지고 있다. 이 와중에 재난의 최초대응자 소방서와 경찰서만 난도질당한다. 이제 하얀 거짓말은 리더에게 교육시켜야 할 필수과목이 되어 버렸다.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없으면서 사과하는 것도 본인 입장에서는 거짓말이다. 책임질 마음이 요만큼도 없으면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것도 본인 입장에서는 거짓말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이상한 건 현 정권은 굳이 왜 저러나 싶게 완강하게 버틴다. 너무도 정직(?)하다. 도대체 왜?

한 가지 해석은 거짓말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도 강한 진짜로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거다. 연구결과를 보면 하얀 거짓말의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에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이 대표적이다. 다른 계산은 없다. 그러면 최근 현 정권의 권력자들이 보여주는 이 정직함은 모든 거짓말은 악이라는 양심의 발로인가?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턱도 없는 얘기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럼 좀 더 그럴듯한 해석을 찾아보자.

거짓말의 나머지 두 가지 유형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만 이득, 듣는 사람은 손해인 사기형 거짓말, 그리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손해, 듣는 사람도 손해인 파국형 거짓말이다. 사기를 치는 것이야 나에겐 명확히 이득이니 내가 나만 생각한다면 주저 없이 거짓말을 한다. 결국 남는 것은 파국형 거짓말인데 여기서 그나마 왜 현 정권의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한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 것이 본인에게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동시에 듣는 사람에게도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 가고 누구 하나 이득 보는 사람이 없는데 거짓말로 사과하고 책임질 이유가 없다. 본인들에게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과와 책임의 현재와 미래의 효과, 즉 동태적 효과를 따져봐야 한다. 지금 사과하고 책임을 지면 당장은 잃어도 미래가 생겨야 한다. 그런데 현 정권 사람들은 현재도 잃고 미래도 잃는다고 생각하는 거다. 지금 사과하고 책임지면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장관은 없고 미래의 검찰수사만 있는 것이다. 지지율이 굳건히 낮은 정권의 비극이다.

그럼 사과를 듣는 사람도 손해라고 생각하는 황당한 발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국민 다수가 ‘바이든’이라 듣고, 이태원 참사가 정부의 책임이라 생각해도 상관없다. 현 정권은 국민 일반을 그들 메시지의 청중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장관이 책임지는 모습에 심각한 자괴감을 느낄 사람들이 내 청중일 뿐이다. 나도 불행해지고 그들도 불행해지는데, 모두를 슬픔으로 몰고 갈 파국형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이게 평소에 능력도 좋은데 인성마저 좋다며 서로를 칭찬하는 현 정권 사람들의 민낯이다. 미안하지 않아서 사과하지 않는 끼리끼리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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