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 암세포 굶겨 죽이기

모든 세포의 꿈은 두 개가 되는 것이다. 대장균이 유전자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 밝혀 노벨상을 탄 프랑수아 자코브가 한 말이다. 인간은 모두 단 한 개의 수정란에서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갓 태어난 아기도 무려 1조2500억개가 넘는 세포를 갖는다. 다 큰 어른은 그보다 30배 많은 약 37조개의 세포로 한평생 살아간다. 그게 다가 아니다. 두 근 반 무게의 간은 1년이 지나지 않아 완전히 새것으로 바뀐다. 정상 간세포도 분열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올해의 간은 작년의 그것과 다르다. 빠르게 분열하는 피부와 소화기관 상피세포는 더 자주 자신의 모습을 바꾼다. 어려서는 대개 세포의 수를 늘리느라, 커서는 그 수를 지키느라 인간은 쉴 새 없이 먹어야 한다.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하나의 세포가 둘이 되려면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까? 짐작하다시피 세포가 가진 가구 한 벌을 고스란히 그대로 만들어야 한다. 핵과 미토콘드리아 같은 소기관은 물론 그 안에 든 유전체도 오롯이 보전해야 하고 세포 안과 밖의 막도 빈틈없이 채워내야 한다. 이는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생명 역사 어느 한순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 온 엄청난 과업이다. 그 핵심에 포도당이 있다. 탄소 원자가 6개인 이 화합물은 이리저리 모습을 바꿔 질소를 받아들이고 아미노산과 핵산으로 변한다. 또 탄소 두 개짜리 단출한 분자로 변한 다음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지방산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화합물을 잇고 끊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세포가 탄생하려면 물질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출발점은 포도당이다. 밥 안에 가득 든 물질이다. 저간의 사정이 이러하니 끊임없이 분열하는 세포는 포도당 식탐이 크다. 줄기세포가 그렇다. 반면 거의 분열하지 않는 세포는 포도당을 알뜰히 태워 에너지를 ATP로 바꾼다. 일꾼 단백질을 동원해 근섬유를 움직이고 신경을 전달하는 데 주로 ATP가 쓰이지만 세포 하나를 더 만들 고분자 빌딩 블록은 필요치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에너지 생산의 주역인 미토콘드리아 의존도가 높은 세포는 암에 잘 걸리지 않는다. 심장 근육세포나 뇌 신경세포가 좋은 사례다. 이들은 미토콘드리아에서 포도당 연소 효율을 높이고 들숨으로 들어온 산소를 잘 단속해 활성 산소가 준동하지 못하게 막으려 든다. 빠르게 분열하는 데 이골이 난 암세포는 그와 반대의 전략을 쓴다. 이들은 미토콘드리아보다 거의 100배 빠른 속도로 포도당을 절반만 깨고 에너지뿐만 아니라 세포 건축용 빌딩 블록을 만든다. 발견자 이름에서 따온 ‘와버그 효과’라 불리는 현상이다. 암세포는 포도당뿐만 아니라 글루타민도 거침없이 받아들인다. 이는 일부 임상의가 암세포를 굶겨 죽이고자 할 때 염두에 두는 대목이다.

이런 시도에 암세포들은 어떻게 대응할까? 그들은 혈관을 새로 만들도록 꼬드겨 산소와 영양소를 갹출하기도 한다. 어떤 암세포는 면역세포를 무력하게 할 무기를 손수 제작하기도 한다. 게다가 암세포는 애면글면 조력자를 찾아다닌다.

섬유아세포와 대식세포는 종양 ‘미세환경(microenvironment)’에 편입되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암세포 성장과 전이를 돕는다. 최근에는 신경세포도 조력자 편에 가담했다. 2020년에는 특정 아미노산을 좋아하는 췌장암 세포에 아미노산을 공급하는 신경세포가 발견되기도 했다.

올해 11월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 연구진은 영양소 대사 또는 암혈관신생을 억제하려는 시도에 맞서 암세포가 통증 감각 신경세포를 동원한다는 연구 결과를 ‘세포 대사’에 발표했다.

중국 연구진은 포도당 의존도가 높은 구강암 세포를 대상으로 영양분 공급을 차단하여 암세포를 죽이려 들었지만 결과가 그리 탐탁하지는 않았다. 왜 그런지 답을 찾다 이들은 구강암 환자들이 자주 극심한 통증을 호소한다는 임상적 사실을 주목했다. 아니나 다를까 암 조직 주변에는 말초 신경이 즐비하게 자리 잡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들의 정체는 안면 삼차신경에서 출발해 입속으로 진출한 신경 세포였다. 그 신경 세포는 촉수를 뻗어 입속 통증을 뇌로 전달할 뿐만 아니라 호르몬을 분비하여 암세포가 굶주림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힘을 실었다. 당장 필요치 않은 암세포 안 소기관을 분해하여 영양소를 벌충하는 일도 뒤따랐다.

이내 연구자들도 바로 반격에 나섰다. 편두통 치료제로 신경세포가 뇌에 전하는 신호를 막은 것이다. 그러자 영양소의 제한 효과가 살아나 되레 암세포가 된서리를 맞았다. 인간과 암세포의 투쟁은 오늘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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