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 폭리, 두고만 볼 일인가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이달 초 발표된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는 양극화의 현실을 드러낸다. 지니계수나 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 소득의 몇 배인지 나타내는 지표)은 2021년 들어 시장소득 외에 처분가능소득 기준으로도 악화됐다. 지난 몇 년간 처분가능소득의 분배는 조세나 사회보험 등의 공적이전에 힘입어 다소나마 개선되는 추세였다. 그러나 작년부터는 그런 흐름조차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불평등을 낳는 시장의 힘이 통제되지 않고 강해지기만 하는 탓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 교수

양극화는 취약계층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에서도 올해 3분기 가구 실질소득(물가변동의 영향이 제거된 소득)은 특히 소득 하위 20%에서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하위 20% 가구의 약 60%는 소비에 쓸 돈을 벌지 못해 매월 적자를 면치 못한다. 결국 적자는 빚으로 쌓인다. 그러다보니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고에는 빚이 큰 역할을 한다. 매체에 따르면 수원 세 모녀가 8월에, 그리고 신촌 모녀가 지난달에 유명을 달리했던 한 가지 배경에도 갚을 수 없는 빚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의 반대편에서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독과점적인 시장 지위를 보장받는 덕분에 대개 막대한 이득을 누린다. 은행들은 이를테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금조달비용이 오르면 그것을 대출 금리 인상으로 충분히 전가시키며 예대마진을 늘려 왔다. 서민 차주에게 금리 변동 위험을 떠넘겨온 셈이다. 은행의 다른 투자에서 입은 손실을 벌충하고 지주회사 내 다른 금융 계열사의 부진한 영업성과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예대마진을 이용해 왔음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은행들은 올해도 3분기까지 합산 이익 42조3000억원의 96%를 이자이익만으로 어렵지 않게 벌어들일 수 있었다. 이는 북미와 유럽 은행들의 이자이익 비중이 60%선인 것과 대조된다. 국내 은행의 이자이익 비중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서도 커졌다. 공동체가 고통을 겪는 경제위기가 은행들한테는 이자놀이 기회였던 셈이다. 물론 은행들의 폭리에는 만기 일시 상환 방식의 변동 금리 대출을 중심으로 차주의 소득보다 부동산 담보가치를 우선시해온 그간의 약탈적 대출 관행도 일정 정도 기여했을 법하다.

다만 은행들의 폭리가 독과점기업으로서 책정해온 대출 금리의 수준과 관련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저명한 경제학자 루이지 파지네티에 따르면 이자율은 임금 상승률을 넘어서지 않아야 공정하다. 꿔준 돈보다 돌려받는 돈으로 더 많은 양의 노동시간을 구매할 수 있으면 공정하지 않다는 뜻이다. 가령 시간당 임금이 1만원이고 임금 상승률이 0%라고 하자. 이제 이자율이 50%라면 오늘 1만원을 빌려준 대가로 1년 후 1만5000원을 돌려받게 된다. 그런데 이는 오늘의 노동시간 한 시간을 차주한테 주면서 내일의 노동시간 한 시간 30분을 받으려는 것이므로 공정하지 않다.

그런 논리라면 최근 은행 대출 금리는 공정할 리 없다.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 조사 결과 상용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기준으로 2020년 이후 임금 상승률이 3%를 소폭 하회하는 정도여서 대출 금리를 밑도는 탓이다. 더욱이 진보진영의 대출 금리 인하 운동을 촉발시킨 전북은행은 2022년 7월부터 4개월간 정책서민금융을 제외한 가계 예대금리차가 평균 5.6%로 비교 대상 타행보다 약 4%포인트 높다. 차주 집단의 신용점수 차이를 고려해도 금리차가 여전히 타행보다 2%포인트 이상 높다는 분석이 설명력 있다. 전북은행이든 아니든 은행들이 시장 지배력에 기초해 공정하지 않은 초과이윤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가능한 대목이다.

기실 은행에 독과점적 지위를 허락한 은행업 면허는 공동체가 부여한 것이다. 은행은 진입장벽과 금융안전망에 의해 제도적으로 보호된다. 따라서 공동체를 위해 복무할 책임도 부여되는 편이 옳다. 특별히 지금은 은행들이 상환 유예, 이자 감면 등 차주별 채무조정에 나서도록 금융당국이 개입해야 하는 시점이다. 고리대금업이 아닌 바에야 초과이윤은 제한해야 맞다. 최고금리나 예대금리차에 대한 규제도, 은행 횡재세도 그래서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헝가리가 은행에 대한 횡재세 부과를 이미 지난 5월에 공식화했다. 스페인도 비용 차감 전 이자수익에 대해 4.8% 횡재세율을 적용하기로 7월에 결정했다. 체코는 11월 결정으로 내년 은행 초과이윤에 60% 횡재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양극화 완화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있어야 한다. 은행 초과이윤의 환수와 취약계층에의 재분배가 그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은행들의 폭리, 더는 두고만 볼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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