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굴러본 정치인에 대한 재평가

이창민 한양대 교수

현 정권을 보면서 생각이 바뀐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좀 굴러본 정치인에 대한 평가다. 여기서 좀 굴러본 정치인이라 하면 선출직 경험이 있으며 여의도판에서도 손을 더럽힌 적이 있는 정치인을 말한다. 초선으로는 부족하고 적어도 재선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평가가 좋아졌다. 예전에는 무식하고, 표계산만 하며, 갑질만 한다고 욕하는 게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권력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고개를 숙였다. 평가가 좋아진 이유는 이렇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

이창민 한양대 교수

사람의 행동은 과거의 개인적 경험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자기가 살아온 궤적에서 크게 못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냥 쿨해 보이려고 모든 가능성을 다 검토한 척, 객관적인 척하는 게 다반사일 뿐이다. 정치인이라고 뭐가 다르랴.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6월29일에 정계입문을 선언했으니 대선 전까지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은 1년도 안 된다. 이 중 아마 가장 강렬한 경험은 대선이었을 것이다. 상대방을 무찔러야 하는 정치 전쟁이 선거다. 요즘같이 미래에 대한 전망 투표가 아닌 과거에 대한 응징투표가 대세인 경우에는 더 그렇다. 유세에서 어퍼컷 날리던 게 정치 경험의 많은 것이라는 것은 여러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선, 어떻게 하면 단기 지지율이 오르는지 떨어지는지만 속성으로 배운다. 거기에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뚫고 법 하나 제대로 통과시켜 본 적이 없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아이러니하게도 노동, 연금, 교육, 건강보험 개혁 얘기가 나온다. 2050년에 나라 망한다면서 말이다. 이 주제들은 대중적인 소구력이 있어서 특히 보수정치인들이 한 20년 우려먹는 주제이지만 이것만큼 정치적 수용성이 떨어지는 의제도 없다. 보편증세만큼이나 법 통과까지 가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성과가 없어도 핑계 대기도 좋다. 이해관계자들이 떼쓴다고 하면 그만이다. 개혁에 절실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대충 던지고, 지지율 올리고, 폐기하고 이 프로토콜이다.

두번째, 정치인으로서의 말의 힘을 습득하지 못했다. 지금은 희미한 기억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먹겠다” 등의 설화로 불필요한 고생을 했고 사회에 남은 것도 없다. 강한 언어 구사가 정쟁과 피로감을 키웠을 뿐이다. 정치인의 말은 영향력이 크다. 그러기에 실수도 하고, 욕도 먹으면서 진화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짧은 정치인의 삶에서 대선기간 몇 번의 말실수 이후 아예 말을 줄였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장관은 독대하고 재계는 비공식적으로 만난다. 말의 힘을 키울 유인도 기회도 없었다. 그 결과는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깨려는 세력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반복해 선동함으로써 대중을 속아 넘어가게 하거나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폭력을 동원해 겁을 주려 한다”며 “이런 세력과는 절대 타협해선 안 된다”는 정치 언어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말은 근거는 명확하고 표현은 아름다워야 한다. 추상, 극단, 증오의 언어로 가득 찬 말을 들을 때 선수들은 알아차린다. 특별히 신뢰할 만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마지막으로 정책철학의 부재이다. 여의도 밖에서 잘난 척하는 전문가들은 좀 굴러본 정치인들의 내공을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인들은, 특히 여당은 잘 정리된 정책정보를 수시로 접하고, 적어도 근본 방향성에 대한 판단기준은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큰 정부가 철학이니 최저임금도 올리는 거다. 방법의 문제가 있을지언정 겉과 속이 다르지는 않다. 윤 대통령은 판단기준이 자유? 내공 없는 보수정치인이 속성 과외로 자유시장경제를 외칠 때는 딱 두 가지이다. 주사파가 싫거나 재벌총수랑 기업을 구분 못하는 거다. 이런 사람들이 시장주의자라며 논리의 자이언트스텝을 밟을 때는 약도 없다.

말이 쉬워 시장경제지 국가별 시장경제의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한국에는 미국에 없는 재벌이 있다. 근데 이걸 친대기업 대 친중소기업 이념대결로 만들어 논점을 흐리고, 재벌개혁을 외치면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주사파라 한다. 단적으로 한국의 산업구조에 대해 재벌을 모르면서 무슨 말을 하나? 또 미국 금융시장은 채권, 주식시장 중심이고 우리는 은행 중심이다. 한국 채권시장은 회사채가 아니라 한전채 같은 특수채 비중이 크다. 즉, 시장주의자들의 진정한 내공은 한국경제에 대한 이해도에서 나온다.

윤 대통령에게 여기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시장주의자라면서 은행, 국민연금, 언론 등의 팔은 비틀고, 법치 세계 19위인 국가를 무정부 국가인 듯 말한다. 책은 안 읽고 명언만 남발하는 셈이다. 좀 굴러본 정치인이 용이었다는 것을 이제 새롭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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