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드라마,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말하다

김선영 TV평론가
[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2022 드라마,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말하다

올 한 해 한국 드라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EMA) 신드롬, 소수자 서사의 확장, 법조물 유행, 사극 및 시대극 지평의 확대 등 몇 개의 주요 경향으로 정리된다. 2022년을 결산하는 거의 모든 기사에서 언급되는 트렌드다. 하지만 이만큼 중요하게 조명받지 않은 경향 가운데서도 주목해야 할 키워드가 있다. 바로 ‘죽음’이다.

김선영 TV평론가

김선영 TV평론가

물론 과거에도 죽음을 다룬 드라마는 많았다. 불치병과 시한부는 출생의 비밀, 재벌, 기억상실 등과 더불어 한국 드라마의 대표 ‘사골’ 소재로 꼽혀왔다. 최근 드라마 속 죽음의 양상은 이와는 다르다.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한 관습적 도구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관한 절박한 질문으로서의 죽음이 그려진다. 말하자면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한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저승 오피스 휴먼 판타지 <내일>(MBC·사진), 호스피스 병원을 배경으로 한 휴먼 멜로드라마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KBS), 영 능력을 지닌 장례지도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휴먼 판타지 <일당백집사> 등이 죽음의 새 경향을 그린 대표적 작품이다. 지난해 방영작이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도 여기 포함된다.

일례로 든 작품들은 불치병을 앓는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전통적인 시한부 서사와 달리, 유품정리사, 장례지도사,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등 죽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동자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다수의 죽음을 에피소드식 전개로 그리는 장르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다수의 죽음은 단순히 개인의 부고가 아닌 사회적 죽음으로서 성격이 두드러지며, 우리 시대의 다양한 부조리를 반영하고 있다.

가령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첫 회부터 이 같은 성격을 분명히 한다. 고인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특수청소전문가 김새별·전애원의 에세이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모티브로 한 이 드라마의 첫 회는 김용균의 죽음을 극화한 에피소드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살인이 명백한 비참한 사연이 지나간 뒤에는, 홀로 치매를 앓다가 고독사한 노인의 에피소드가 잇달아 등장한다. 주인공인 유품정리사의 노동은 사회적 약자들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기 위한 추모의 과정으로 그려진다.

장르는 전혀 다르지만, 드라마 <내일>도 유사한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절망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시대, 죽은 자를 인도하던 저승사자들이 목숨을 살리는 임무에 뛰어들게 된다. OECD 자살률 1위 국가라는 비극적 현주소 위에서 탄생한 이 작품은 다양한 죽음의 사연을 통해 학교폭력, 성폭력, 직장 내 괴롭힘, 악성 댓글, 청년 우울증, 생활고 등 한국 사회 곳곳의 병폐를 이야기한다. 타살에 가까운 죽음들을 ‘위기관리 저승사자’라는 판타지적 장치를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다.

<일당백집사>도 비슷하다. 죽은 사람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 백동주(이혜리)는 고인이 생전에 다 이루지 못한 소원 하나를 들어줌으로써 그들에게 비로소 영원한 안식을 선사한다. <내일>보다 좀 더 사적인 사연들이 그려짐에도, 생활고에 아이를 죽이고 극단적 선택을 한 싱글맘의 비속 살해 사건과 같은 사회적 죽음이 어김없이 언급된다.

호스피스 환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당신이 소원을 말하면>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내일> <일당백집사> 등과 달리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지만, 죽음을 다루는 방식이 판타지에 가까운 것은 동일하다. 시스템이 돌보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한 마무리를 ‘천사’와도 같은 자원봉사자 공동체가 대신 책임져주는 이야기 방식이 그러하다.

올해 가장 흥미로운 드라마 중 하나였던 <나의 해방일지>(JTBC) 마지막 회에서는 주인공 창희(이민기)가 장례지도사라는 천직을 발견하는 결말을 그린다. 우연히 장례지도사 교육장에 들어가게 된 창희는, “장례는 한 사람의 마지막 생의 마침표를 잘 찍게 해주는 이벤트 같은 것”이라는 강사의 말에 깊은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시대는 이러한 장례가 허락되지 않는 사회다. 죽음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드러내는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취약계층일수록 존엄하게 죽을 권리에서 멀어진다. 요컨대 최근 드라마 속 ‘웰 다잉’ 트렌드는 역설적으로 웰 다잉이 불가능한 우리 사회의 판타지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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