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어떻게 고향에 갈까?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좋아 보이는 건물을 보거나 ‘임대’라는 두 글자를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사무실을 이전하려고 눈 빠지게 매물을 들여다보고, 열심히 발품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감히’ 엘리베이터 있는 사무실을 꿈꿨다. 근무 환경만 고려해서가 아니다. 우리 공간을 휠체어로 이동하는 장애인, 유아차를 이용하는 양육자를 비롯한 교통약자들도 올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함부로 가질 꿈이 아니었다는 걸 곧 깨달았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엘베 있는 건물’이라는 부동산의 소개에,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면 서너 개라도 계단이 있어서 휠체어 접근은 불가능했다.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너무 작아서 휠체어 탑승은 불가능한 곳도 많았다. 엘리베이터 있는 건물은 (당연히) 보증금과 월세와 관리비도 비쌌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엘리베이터가 있더라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까지 갖춘 경우는 더욱 희소했다. 딱히 건축주나 건물주 잘못은 아니라 생각한다. 단지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닌, 총체적 과제라는 걸 절감했을 뿐이다.

장애인은 명절 때 어떻게 고향에 갈까? 명절을 앞두고 이런 질문이 생겼다. 비장애인처럼 기차나 시외·고속버스를 타고 갈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이제껏 기차나 시외·고속버스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내가 무심한 탓도 있지만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시외·고속버스가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있다 하더라도 휠체어는 짐칸에 싣고 몸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탑승해야 하고, 전동휠체어는 아예 짐칸에 실을 수도 없다. 비교적 교통 환경이 좋은 수도권만 해도 이런데, 수도권 외 지역의 장애인은 어떻게 이동을 할까?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일상적 공간에서 장애인을 만날 수 있겠는가?

“장애인도 버스 타고 고향 가고 싶다.” 명절마다 나오는 ‘장애인 시외 이동권’ 투쟁 구호다. 이 요구가 이상하게 들리는가? 당연하게 여겨지는가? 만약 이상하게 들린다면 그것이 왜 이상한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겠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단지 장애인의 이동권‘만’ 보장하자는 게 아니다.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야 식당에 가든 영화관에 가든 평범한 일상이 가능해지기에 모든 권리의 출발점이라고 봐야 옳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 똑같이 누려야 할 기본권인 것이다. 또한 ‘장애인’만을 위해 이동권을 보장하자는 게 아니다. 장애인들의 절박한 투쟁으로 서울 지하철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비장애인 시민과 유아차 동반자, 노약자들도 누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은 젊거나 비장애인인 누군가도 언젠가 휠체어를 이용하여 이동을 해야 할 날이 오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그들만의 이기적인 투정도 아니고, 남의 일도 아니다. 우리 문제이며 사회적 과제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공간에, 내가 타는 지하철과 버스에 장애인도 함께 있기를 원한다. 그것이 욕심이 아닌 현실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이미 있다. 문화와 제도를 바꾸는 것. 이를 위해 합당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불편한가? 그렇다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요구하자. 우리는 장애인과 함께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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