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을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

김민하 정치평론가

얼마 전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밝혔다. 앞으로 선거법 개정 논의가 활발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다. 여야 의원들이 제각기 발의한 선거법 개정안이 있고 내년 총선 전에 선거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기에 정치개혁 논의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다고 볼 수 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그런데 우리 정치권이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그건 쉽지 않다. 각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복잡해서? 그것도 이유다. 하지만 의지가 있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뭐 있겠는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우리 정치는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까? 선거법 개정론자들은 대개 다당제 구현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적극 공감한다. 양당제를 기반으로 한 정치는 최악이다. 오직 상대를 반대하는 것으로만 우리 편을 조직한다. 선거 때마다 보는 양당의 조직 논리를 보라.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을 반대하는 사람들 다 모이라 하고,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을 막자며 모두 뭉치자고 한다.

선거에서 진 쪽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긴 쪽이 ‘삽질’하면 “거봐라” 하며 반사이익을 챙긴다.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배신자’가 된다. ‘다른 목소리’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일은 잘 없고 혹시 상대편이 아닌지 의심만 한다. 내부 총질, 수박, 역선택, 똥파리, 반윤 우두머리…. 당내 정치에 동원되는 이런 어휘들이 다 비슷한 맥락에 있다. 이런 정치를 견디지 못하고 튕겨 나가면 또 “거봐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치에 질려 버린 지 오래지만, 선거 때 되면 누구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또 울며 겨자 먹기로 양당 후보 중 하나에 투표한다. 이러한 눈물을 머금은 선택들이 모여 다시 양당제적 환경을 유지하는 밑거름이 된다. 악순환이다.

다당제를 근간으로 한 정치환경이 구현되면 이러한 고통 유발 정치에서 탈출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릴 수 있다. 정치적 지향을 논할 때 상대를 왜 반대하게 되었는지보다는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게 더 중요해지고 그게 좋은 정치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당제는 좋은 정치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유럽의 극우포퓰리즘이다.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이나 프랑스의 ‘국민연합’은 사회모순의 책임을 이민자 등 소수자에게 돌리면서 기득권을 ‘배신자’로 지목하는 정치문법으로 성장했다. 다당제를 구현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가 이런 지경이라는 게 보여주는 바는 뭘까? 다당제 구현은 좋은 정치를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정치개혁의 성공 여부는 선거법 개정의 최종 목표가 좋은 정치 구현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좋은 정치란 뭘까?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자기 지향을 앞세우고 이를 설득하는 정치, 내부의 ‘배신자’ 찾아내기에만 몰두하는 지지층을 설득해 생산적 논쟁으로 이끄는 정치,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정치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를 ‘종북주사파’라 부르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정무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참모의 조언에 “무슨 민주당 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고 면박 주는(동아일보 보도) 대통령, 측근의 구속 기소에 대한 책임 있는 언급 없이 무조건 “정치검사의 정치보복”만 외치는 야당 대표, ‘거대양당’이란 단어를 빼고는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는 처지의 원내진보정당이 주장하는 정치개혁을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신뢰할 수 없으니 안 되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개혁을 실현하길 바란다면 신뢰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마음이 꺾이지 않게 좀 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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