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송혁기의 책상물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연말부터 설 연휴까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수도 없이 주고받아 왔다. 복(福)이라는 글자가 희생을 바치는 제단과 술 단지를 그려놓은 것이므로, 노력으로 이루는 결실이라기보다 신적인 존재에게 빌어서 받는 행운이라는 의미가 애초부터 담겨 있다. ‘복’자를 거꾸로 걸어놓는 것은 ‘거꾸로 도(倒)’가 ‘이를 도(到)’와 음이 같아서인데, 여기에서도 복이란 가만히 있어도 이르는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상대가 누구든, 내가 그를 위해 해줄 게 없다 하더라도,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만큼은 넉넉하게 던질 수 있는 것이다.

복이라는 글자가 생긴 지는 매우 오래되었지만 <논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맹자>에서 “나의 선한 의도를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끝까지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아 바르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마지막에 <시경>의 ‘자구다복(自求多福)’을 인용한 것이 보인다. 자신의 덕을 닦아서 그것이 하늘의 바른 이치에 부합하는지 성찰하고 또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는 길이라는 의미이다.

장기하의 ‘새해 복’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가사에 두 번의 반전이 있다. 모든 이들에게 “새해 복”을 외치다가 문득 “새해 복만으로는 안 돼. 니가 잘해야지. 열심히 해야지”라며 일갈한다. 누군가 줄 복을 기대하지 말고 자신의 책임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인가 싶은 순간, 다시 “새해 복만으로도 돼. 절대 잘하지 마. 노력을 하지 마”라며 앞의 말을 뒤집는다. 모순된 내용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애써도 소용없어. 복만 받으면 돼”라는 가사에서 우리 삶의 한 단면이 아픈 웃음으로 전해진다.

여전히 누군가 내려주는 복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서로에게 건네는 건 기분 좋고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만큼은 “모든 화와 복은 자신이 구하는 것이다”라는 맹자의 말을 들려주며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이어갈 일이다. 그래야 우리에게 주어진 감사한 복을 제대로 누릴 수 있고, 언젠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닥쳤을 때 조금은 더 의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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